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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래식기타

기타의 역사

by 라폴리아 2018. 5. 16.

기타의 유래는 고대 음악에서 찾을 수 있다. 대략 B.C.4000~3500년 경의 메소포타미아 지역과 고대 이집트 아라비아 등지의 고분과 벽화 등에서 발견되는 기타와 닮은 여러 종류의 발현 악기 그림에 그 근거를 두고 있다. 그래서 기타는 현존하는 악기 중 가장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것이다.

고대 그리스의 발현악기 키타라(Kithara)

 

 

고대 그리스의 발현 악기로 리라(lyre)와 키타라(kithara)가 있었다. 키타라는 서아시아에서 수입된 무겁고 견주하기 힘든 악기였다. 나무로 된 U자형의 무거운 공명통에 세로로 줄을 친 악기로 왼쪽 가슴에 안고 오른손 손가락이나 상아로 된 픽(pick)으로 연주한다. 현의 수에 따라서 트리콜드(3현), 테트라콜드(4현), 헵타콜드(5현), 헥사콜드(6현) 등으로 불렸고 7현 키타라는 종교제전이나 운동경기에 사용되었다고 한다.

 

오늘날 기타(guitar)의 명칭이 여기서 유래된 것으로 보기도 하지만 키타라에는 기타(guitar)와 다르게 목(neck)이 없어서 그렇지 않다고 보는 경우도 있다. 간혹 그리스나 로마이 예술에서 보여지는 류트는 판도라(pandora) 또는 판도로스(pandouros)로 불리어 졌는데 당시 류트 주자는 혼자 가정에서 연주하는 모습의 조형예술로 표현되었다.

 

B.C.1400년의 이집트 신왕국 시대의 유적에서는 기타의 선조로 볼 수 있는 발현악기 네퍼(nefer) 혹은 오우드(oud)라는 진보된 악기의 흔적이 발견되었다.

 

8세기경 사라센 제국은 스페인을 지배하였다. 이집트를 거쳐 북아프리카와 스페인으로 갔던 아랍의 지배하에 스페인의 예술과 과학은 번창하였다. 아랍인들, 즉 무어인들이 들여온 퀴타라(quitara)라는 악기에 의해 악기의 기본 형태가 서유럽 악기 제작자들에게 전해져 기타 탄생의 기반이 되었을 것으로 추정하는 설이 있다. 이 기타를 아라비아 풍의 기타, 즉 <무어풍이 기타>라고 하는 데 음 하나 하나를 뜯어 연주하는 뿐떼아도(punteado)주법으로 연주되었다. 악기의 뒷면이 둥글고 목이 길며 알몬드(almond)처럼 생긴 악기였으며 류트가 성행하게 되자 스페인에서 사라졌다고 한다.

 

스페인에는 기타의 전신이라고 할 수 있는 고대 그리스의 키타라가 발전한 <라틴 풍의 기타>가 있었다. 로마인에 의해 전해져 여러 차례의 개량으로 훗날 16세기 경의 스페인 비우엘라로 발전하게 되었다고 한다. 오늘날의 기타와 같은 8자형 악기로 두 악기의 크기는 소형이었다.

 

기타는 13, 14세기에 유럽에 널리 보급되어 있었지만 특히 스페인을 그 요람으로 볼 수 있다. 스페인에 남아있는 기록을 보면 기타의 종류에 <기타라 라티나-guitara latina>라는 라틴 풍의 기타와 <기타라 모리스카-guitara morisca>라는 무어 풍의 기타가 있다.

 

스페인의 북쪽에 위치한 <산띠아고 데 라 꼼뽀스텔라>의 성당 문 조각에도 류트처럼 몸통에서 돌출한 네크를 가지고 있지만 뒷판이 둥글고 볼록하게 튀어나오지 않고 평평하며 옆판이 있는 기타를 볼 수 있다.

 

이탈리아는 <기타아라>, 프랑스는 <기테르> 또는 <기테른>, 독일은 <구이테르나>, 영국은 <기턴>, 스페인은 <기타라>등으로 다르게 발음했다.

 

4코스(Course, 겹줄)

 

15세기 후반의 음악 이론가 요하네스 틴크토리스는 <기타는 스페인 사람들에 의해서 발명되었다>라고 분명히 밝히고 있다. 15세기 4코스(courses, 겹줄) 기타의 출현이후 기타는 서민들 사이에서도 퍼지게 되었다. 이 겹줄을 메는 습관은 18세기까지 이어졌다. 4코스 기타는 서민의 악기로 큰 환영을 받았고 널리 애용되어 노래와 춤의 반주 악기로 인기가 대단하였다.

 

16세기에는 이미 스페인도 음악 문화가 고도로 발달하여 기악 분야에서는 유럽의 어느 나라보다 앞서 있었다. 오르간과 비우엘라는 13세기에 나타나 16세기에 크게 성행했다. 비우엘라는 스페인 궁정 음악가들이 여러 나라 중 특히 이탈리아의 류트를 모방해서 6음 현으로까지 현의 수를 증가 시킨 신종 악기였다.

 

유럽 다른 나라에서는 모두 류트를 애용했을 때 스페인은 류트를 거의 사용하지 않고 비우엘라를 사용했다. 그러나 이 악기는 귀족적인 악기로 궁중에서 사용되었고 4코스의 기타는 서민을 위한 대중적인 악기로 사용되었다. 비우엘라의 황금시기는 짧아서 16세기 후기에 거의 쇠퇴하기 시작했다. 그 원인은 때마침 출현한 바이올린과 18세기에 완성된 피아노를 주축으로 오케스트라가 연주되면서 상대적으로 음량이 작은 기타는 점차 회퇴하였기 때문이다. 그 상황에서 ‘에스피넬’은 5현 기타를 확립하였고 <이마트>는 기타 교본을 만들어 스페인 전역에 기타를 보급하고 조율도 현재 기타와 6번 줄이 없는 것만 제외하고 별 차이점이 없게 만들었다.

 

17세기 바로크의 5코스 기타는 18세기에 들어와서도 얼마 동안 사용되었으나 차차 자취를 감추었다. 이는 고전파 시대의 흐름에 적응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18세기 음악은 다성부에서 단성부로 옮겨갔으며 기타 악보도 타블라추어에서 새로운 5선 기보법으로 옮겨 갔는 데 이러한 점에 숙달된다는 것이 그리 쉬운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기타 역사가들은 이 시기를 ‘제 1쇠퇴기’라고 부른다. 18세기 중엽부터 기타의 인기가 하락하여 단지 소수의 노력으로 그 명맥이 유지되었다. 이렇게 인기가 하락한 이유 중의 하나는 당시의 하프시코드 제작자였던 커크만이 저질의 악기를 대량 생산하여 천민이나 거리의 악사에게까지 보급했기 때문이었다.

 

이러한 가운데 위대한 스페인의 작곡가 소르(Fernando Sor)가 영국에서 기타에 대한 새로운 열광을 다시 불러 일으켰고 오늘날과 같은 6현 악기가 만들어져 기타의 음역 확장과 음악적 능력이 크게 향상되었다. 이 무렵 스페인에도 기타에 부활의 기운을 불어 넣은 음악가이자 신부인 바실리오가 나타났다. 그는 페데리코 모레티와 디오니시오 아구아도에게 기타를 가르쳤다. ​모레티는 바실리오의 이론과 주법을 이어받아 이를 발전시켰다. 우선 코스(겹줄)기타가 아닌 6현 외줄 기타로 바꾸었고 1799년 “6현 외줄 기타 연주의 원칙”을 내어 놓았다. 이처럼 18세기 말 기타는 역사상 가장 큰 전환기를 맞이하였는데 이탈리아에서 먼저 일어나 프랑스, 오스트리아, 스페인으로 파급되었다.

 

1825년 디오니시오 아구아도(Dionisio Aguado)는 근대 기타 주법의 원리를 확립했고 그가 이룩한 주법은 오늘날까지 계속 사용되고 있다.

 

19세기 전반에 이르는 기간은 기타의 황금시대라고 할 수 있다. 위대한 기타리스트들이 속출하였는데 이 가운데에 이른바 ”표현파”로 불리우는 스페인의 기타리스트 소르와 아구아도, 이탈리아의 줄리아니의 활약은 오늘날 고전 기타 음악사에서 대단히 중요하다고 평가하고 있다. 그러나 소르가 작곡과 연주를 통한 기타의 음악성에 대해 보여준 무한한 가능성과 동 시대의 훌륭한 작곡가였던 아구아도와 줄리아니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기타의 인기는 다시 하락하였고 1839년 소르는 명성과는 거리를 멀리한 채 사망했다.

 

 

19세기 기타 / 19세기 빠제 기타 / 19세기 빠제 기타 / 토레스 기타

 

19세기에 들어서서 현대 기타의 아버지 라고 불리우는 ’안토니오 토레스(Antonio de Torres)’가 확립한 근대 표준형의 성능 좋은 기타로 고전파 기타리스트들은 단성부 음악을 연주할 수 있었다. ​고전적인 작곡기법과 악기 특성을 그들 나름대로 연구하여 아름다운 고전기타의 명곡을 많이 내놓았다.

 

19세기는 유럽을 중심으로 클래식 기타 연주가 가장 활발했던 시기이다. 이때 비로소 반주용 악기에서 벗어나 독주 악기로써의 지위를 확고히 굳혔으며 누구든지 언제 어디서나 기타를 즐길 수 있었던 시대가 되었다. ​이 시기에는 기타 작곡가 뿐만 아니라 많은 음악가들이 기타 곡을 작곡했다. 그 중 니콜로 파가니니(N. Paganini), 프란츠 슈베르트(F. Schubert)등이 잘 알려져 있다.

 

이렇게 다시 활성화 된 기타는 19세기 중, 후기에 이르러 전 세계의 대가들이 연주하게 되었다. ​그러나 그랜드 피아노와 확장된 오케스트라의 출현으로 음악의 규모가 점차 커짐에 따라 기타는 음량이 작다는 치명적인 약점으로 인하여 또 한번 제 2의 침체기를 맞게 되었다. 기타의 고장 스페인에서 조차 떠돌이 집시나 거리의 악사, 농부들만이 만지는 하류 악기로 전락하게 되었다. 기타리스트가 유명해질 수 있는 길은 술집 외에는 거의 없게 되었으나 이때에도 여러 기타리스트들은 기타를 연구, 육성하여 기타 음악은 더욱 과학적인 체계를 갖출 수 있게 되었다.

 

그 중 스페인의 프란시스코 타레가(Francisco Tarrega)는 전혀 다른 각도에서 기타 주법을 연구하였다. ​그는 기타가 지닌 모든 가능성을 발견한 위대한 기타리스트로 오늘날 추앙 받고 있다. ​그는 확실하게 멜로디와 화음을 입체적으로 구사하는 동시에 보다 색감있는 표현도 가능하게 하였을 뿐 아니라 왼손 운지법과 오른손 탄현법에 철저한 개혁을 이룩하여 합리적인 현대 주법을 만들었다. 이렇게 하여 기타 음악은 하나의 예술로써 자리잡기 위한 기초를 마련하게 되었다.

 

타레가 이후의 기타리스트로서 그의 영향을 받지 않은 사람은 하나도 없을 것이다. 타레가 시대에 이르러 약 100년간 묵혀있던 스페인 음악 또한 되살아났다.

 

​바깥 세계에 스페인 음악을 알려준 작곡가들로 알베니스(Issac Albeniz), 그라나도스(Enrique Granados), 파야(Manuel de Falla )가 나타났다.

 

​그들은 모두 기타를 좋아했고 기타적 형식을 지닌 그들의 작품들이 훌륭한 기타곡으로 편곡되어 오늘날 많이 연주되고 있다. 타레가에 이어 그의 제자 미겔 요벳(Miguel Llobet), 에밀리오 푸홀(Emilio Pujol), 다니엘 포르테아(Dniel Fortea), ​알베르토 오브레곤(Alberto Obregon)은 근대와 현대를 잇는 가교 역할을 하였다. 타레가를 통해서 많은 작곡자와 연주가들이 반주의 역할만이 아닌 기타의 새로운 가능성에 대해 눈뜰 수 있게 되었다.

 

타레가의 이러한 작업은 금세기 최고의 위대한 기타리스트 세고비아(Andres Segovia)로 인해 더욱 크게 발전하게 되었다. 세고비아는 타레가와 직접적인 접촉은 없었지만 그 정신은 선명하게 이어 받았다고 할 수 있다. ​그는 현대 기타의 부활을 가져 왔고 20세기 기타의 독자적인 지위를 마련하였다. 그는 기타를 음악의 한 장르로 정착시키고, 예술적이며 고전적인 연주회 악기로 인식시켜 주었으며 다른 악기들처럼 훌륭한 독주, 중주, 협주 악기로 올려 놓았다.

 

​그의 출현은 많은 신세대 기타리스트들에게 문호를 개방해 주었다. 20세기 제 2의 기타 황금기에는 세고비아를 정점으로 많은 기타리스트들이 활약하였고 지금도 활동하고 있다. 이 거장의 지칠 줄 모르는 정열과 활약으로 기타는 오늘날 전 세계의 청중을 매료시키고 있을 뿐만 아니라 수많은 작곡가와 연주가들이 기타를 더욱 더 사랑하고 장려하게 되었다. ​클래식 기타는 현재까지 세계 각지에서 가장 친밀한 악기로 남아있다.

 

오늘날 세계적인 명기 제작자들의 연구로 기타 최대의 약점인 작은 음량을 보완한 콘서트용 기타를 개발하게 되었고 아직도 기타의 음량만으로는 조금 미흡한 면이 있으나 드디어 오케스트라와의 협연도 가능하게 되었다.

 

왜 <기타의 역사>라고 하면 결국 <클래식 기타의 역사>를 의미하는 것인지 그 이유를 잘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스페인>이 기타의 본고장이라는 사실 또한 이렇게 흘러내려온 기타의 역사 때문이다.

 

 

기타리스트 이진우 작성 (참고문헌: 스페인 음악의 즐거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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