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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향기

와이로(蛙利鷺)

by 라폴리아 2018. 1. 12.

와이로(蛙利鷺)


고려 18대 왕 의종 임금이 하루는 단독으로 야행을 나갔다가 깊은 산중에서 날이 저물었다. 요행히 민가를 하나 발견하고 하루를 묵고자 청을 했지만, 집주인이 "조금 더 가면 주막이 있다"고 하여 임금은 할 수 없이 발길을 돌렸다. 그런데 그 집을 나오며 보니 대문에 붙어 있는 唯我無蛙 人生之恨 (유아무와 인생지한, 나는 있는데 개구리가 없는 게 인생의 한이다)이라는 글이 있었는데, 개구리가 뜻하는 게 뭔지 도저히 감이 잡히지 않았다.


"뭐지 이게?"


임금은 주막에 들려 국밥을 한 그릇 시켜 먹으면서 주모에게 외딴집에 사는 사람에 대해 물어보았다. 주모 왈, 그는 과거에 낙방하고 주막에도 잘 안 나오며 집안에서 책만 읽으면서 살아간다는 것이었다. 궁금증이 더욱 발동한 임금은 다시 그 집으로 돌아가서 사정사정한 끝에 하룻밤을 묵어갈 수 있게 되었다.

 

임금은 잠자리에 누웠지만 집 주인의 글 읽는 소리에 잠이 오지 않아 드디어 면담을 신청했다. 그리고는 그렇게도 궁금했던 唯我無蛙 人生之恨(유아무와 인생지한)에 대해 물어보았다. 집 주인 왈,

 

옛날에 노래를 아주 잘하는 꾀꼬리와 목소리가 아주 듣기 거북한 까마귀가 살고 있었는데, 하루는 까마귀가 꾀꼬리한테 내기를 하자고 했다. 바로 "3일 후에 백로를 심판으로 하여 노래시합을 하자"고 것이었다. 노래를 잘 하기는 커녕, 목소리 자체가 듣기 거북한 까마귀가 자신에게 노래시합을 제의받은 꾀꼬리는 너무나 어이가 없었다. 어쨌든 꾀꼬리는 시합에 응하기로 하고 목소리를 더 아름답게 가꾸고자 노력했다. 반대로 노래시합을 제의한 까마귀는 노래 연습은 하지 않고 자루 하나를 가지고 논두렁의 개구리를 잡으러 돌아 다녔다. 그렇게 잡은 개구리는 백로한테 뇌물로 가져다주고 뒤를 부탁하기 위한 것이었다.

 

약속한 3일이 되어 꾀꼬리와 까마귀가 노래를 한 곡씩 부르고 심판인 백로의 판정을 기다렸다. 꾀꼬리는 자신이 생각해도 너무 고운 목소리로 노래를 잘 불렀기 때문에 승리는 누가 봐도 자명했는데, 심판인 백로는 까마귀의 손을 들어주었다. 한동안 꾀꼬리는 노래시합에서 까마귀에 패배한 이유를 알 수 없었다. 그러나 얼마 지나서 백로가 가장 좋아하는 개구리를 잡아다주고, 까마귀가 뒤를 봐 달라고 힘을 써서 패한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 후 꾀꼬리는 크게 낙담하고 실의에 빠졌다. 그리고 "나는 있는데 개구리가 없는 게 인생의 한이다"라는 글을 대문앞에 붙혀 놓았다고 한다.

 

이 글은 집 주인(이규보 선생)이 임금한테 불의와 불법으로 뇌물을 갖다 바친 자에게만 과거 급제의 기회를 주어 부정부패로 얼룩진 나라를 비유해서 한 말이었다. 이때부터 와이로(蛙利鷺)란 말이 생겼다.


이규보 선생 자신이 생각해도 그의 실력이나 지식은 어디에 내놔도 안떨어지는데 과거를 보면 꼭 떨어진다는 것이었다. 돈도 없고, 정승의 자식이 아니라는 이유로 과거를 보면 떨어진다는 것이었다. 자신은 노래를 잘하는 꾀꼬리와 같은 입장이지만 까마귀가 백로한테 개구리를 상납한 것처럼 뒷거래를 하지 못하여 과거에 번번히 낙방하여 초야)에 묻혀 살고 있다고 하였다.

 

그 말을 들은 임금은 이규보 선생의 품격이나 지식이 고상하여, 자신도 "과거에 여러 번 낙방하고 전국을 떠도는 떠돌이인데, 며칠 후에 임시 과거가 있다 하여 개성으로 올라가는 중 이라'고 거짓말을 하였다. 그리고 궁궐에 돌아와 즉시 임시 과거를 열 것을 명였다고 한다.

 

과거를 보는 날, 이규보선생도 뜰에서 다른 사람들과 같이 마음을 가다듬으며 준비를 하고 있을 때 시험관이 내 걸은 시제가 바로 “唯我無蛙 人生之限” 이란 여덟 글자였다고 한다. 사람들은 그게 무슨 뜻인지 생각하고 있을 때, 이규보 선생은 임금이 계신 곳을 향해 큰 절을 한 번 올리고 답을 적어 냄으로서 장원급제하여 차후 유명한 학자가 되었다. 


이때부터 "와이로"(蛙利鷺/唯我無蛙人生之恨)란 말이 생겨났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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