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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향기

이름없는 순교의 꽃들, 은화<隱花>를 읽고......

by 라폴리아 2010. 7. 30.

 

 

이름없는 순교의 꽃들, <은화(隱花)>를 읽고....

 

<은화(隱花)>의 원 저자는 황해도 은율 출신의 이계중 신부이다. 그를 신학교로 보낸 사람은 당시 은률 본당 신부였던 윤의병 신부였다. 그는 윤의병 신부가 이북으로 납치된지 27주년이 되는 해(1977년)에 그를 추모하고 덕을 기리고자 윤의병 신부 이름으로 이 책을 자비 출판하였다.

이 책은 매우 열악한 신앙환경 속에서도 강렬하게 용솟음했던 이름없는 순교자들의 남다른 신심을 보여준다. 특히, 비리버와 데레사 부부가 관아에 끌려가서 처형 당하기전 문초받으며 관장과 주고받는 대화는 이 책의 핵심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포졸이 비리버 내외를 그 자리에 꿇어 앉혔다. 그러자, 관장은 문부를 뒤적거리고 나서 뜰 아래 꿀린 비리버 내외의 숙인 머리를 내려보다가

<네가 이성칠이라 하는 천주학쟁이냐?>

<그러합니다.>

 

<네 이놈, 너희 집안은 대대로 나라에 벼슬을 하고 문벌이 뚜렷한 양반가의 자손인데,  어찌해서 저 서양 오랑캐들이 하는 道를 하고 있단 말이냐?>

<天主敎는 天主 즉, 하느님을 공경하는 도로서, 사람된 자는 양반 상놈 할 것 없이  누구나 다 봉행할 道이오, 인간으로서 잠시라도 떠나지 못할 道로소이다. 논어(論語)에도 공자(孔子)께서는 소사상제(昭事上帝)라 하여 하느님을 섬기라 말씀하셨고  중용(中庸)에도 도야자(道也者)는 불가수유리야(不可須臾離也)라 하여  道라는 것은 모름지기 잠깐이라도 떠날 수 없는 것이라 말씀하지 않았습니까?>

 

<아따 주제넘는 놈! 이 놈아 그것은 다 우리 유교를 가지고 하는 말이지, 너희 천주학을 가지고 하는 말인 줄 아느냐?>

<천주교나 유교나 다 진리를 따르고자 하는 점에는 일반일 줄 하오나, 유교는 세상의 만물의 근원이신 천주를 공경치 않고 그 중간이 되고 결과가 되는,

 조물에 불과한 옛 성현과 조상만 숭배하라 하므로 이단이라 아니할 수 없나이다.>

 

<너 이놈, 여러 말할 것 없이 양인 있는 곳이나 말하여라>

 이에, 비리버가 모른다고 하자, 관장은 포졸을 시켜 비리버의 주리를 틀고 장대로 사정없이  내려치는데, 데레사의 가슴은 난도질을 당하는 듯 하였다.

<네 이놈, 양인 있는 곳을 못 대겠거든 배교를 하여라, 살려줄 터이니......>

 죽은 송장처럼 축 늘어져있던 비리버는 배교하라는 말에 눈을 번쩍 뜨고 머리를 들어 관장을 올려다보며,

 <그래, 사또께서는 임금을 배반하라 하면 배반하겠습니까? 역적질을 시켜도 분수가 있지 않소?>

 

<너 이놈, 그러면 너는 어찌하여 나라에서 금하는 道를 한단 말이냐? 그것은 역적이 아니냐?>

<신하의 말이 어찌 임금의 말보다 중하며, 임금의 말씀이 어찌 상제의 말씀보다 중할 수 있겠습니까? 신하의 말을 들어 임금을 배반함이 만만불가한 것처럼......>

<저런, 발칙한 놈! 저 놈의 주둥이를 바스러뜨려라!>

......

관장은 비리버를 내보낸 다음 데레사에게

<그래, 너도 천주학을 하느냐?>

<예, 저도 천주성교를 합니다.>

 

<꽤 얌전하고 똑똑한 새댁이 그 더러운 오랑캐교를 한단 말이냐?>

<사또께서는 어찌해서 남의도를 더럽다고 하십니까?  관장이 되어 법정에 나와 공사를 하게 되면 점잖게 물어볼 말이나 물어 보시지 않고  공연히 우스개 말만 하시니 어찌 되었습니까?>

 

<그래 내가 너 보고 더러운 교를 한다는게 무엇이 잘못이냐?  들으니 천주학쟁이들은 밤낮 양국 오랑캐와 한방에서 군다는구나?>

<사또께서는 그래 남들이 지껄이는 소리를 다 믿습니까? 소인도 들으니 청주 병사도청에서는 관장들이 밤낮 기생들 데리고 놀기만 하고 정사를 아니한다 하니 과연 참말 그렇습니까? 공연히 남의 道라고 진가를 알아보지도 않고 더러운 교니, 오랑캐교니 떠드는 사람들이 참.....>

 

<너는 그래 천주나 보고서 그 따위로 지껄이느냐? 우몽한 무리들 같으니라고......>

<사또께서는 꼭 보시는 것만 믿습니까? 촌 백성이 꼭 상감님을 제눈으로 봐야만 상감님이 계신줄 믿습니까? 보이는 것도 이치에 맞지 않으면 믿지 말아야 하고 안보이는 것이라도 이치에 맞으면 믿어야 옳습니다. 사또님, 지금 거기 앉아 계시니 저기 보이는 앞산을 손가락으로 가리켜 보십시오. 손가락이 저 산보다 더 높이 보일 겝니다. 그렇다고 손가락이 더 높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사또님이 지금 앉아계신 관사는 그것을 지은 목수없이 저절로 지어졌겠습니까? 사또님이 그 목수를 못보셨을지라도 전에 목수가 있어 관사를 지었음은 다 알 수 있지 않습니까? 마찬가지로, 우리가 비록 눈으로 천주를 못볼지라도 세상만물을 보면  그 주체가 되는 조물주가 계심을 알게 됩니다. 사람들이 위급한 경우에는 저절로 하느님을 찾지 않습니까?>

 

<사람이 죽으면 없어지고 마는 것이지.  너희들은 죽은 다음에 천당에 가느니 지옥에 가느니 하지만 사후의 일을 누가 안단 말이냐?>

<아이고, 사또님! 참 딱한 말씀도 하십니다. 사람이 죽어 아주 없어지고 말 것 같으면 왜 사또님은 죽은 조상의 제사를 지냅니까?  제사를 지내는 것은 죽은 조상의 영혼이 남아있음을 믿기 때문에 지내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육신은 죽으면 썩어 분토가 되어버리지만 영혼은 신령하여 없어지지 않습니다. 죽은 이들의 영혼은 다 각각 자기 생전에 행한대로 천당에 가기도 하고 지옥에 가기도 합니다.>

 

<허! 너두 참 꽤 아는 체를 하는구나! 글쎄, 누가 천당 지옥을 가보고 왔단 말이냐? 그런 허무맹랑한 소리만 지껄이고 앉았으니......>

<어찌 가서 본 다음에만 알 수 있다 하오리까? 사또님이 제주도 귀향소를 아니 가보셨을지라도, 이것은 황송한 말씀이오나 사또님이 만일 나라에 죄를 지으면 귀향소로 가게 될 것은 뻔한 일이 아니오며, 사또님이 아직 큰벼슬에 오르지 않았으나 만일 나라에 큰 공을 세우면 사또님의 벼슬은 더 올라갈 것은 불 보듯 당연한 일이 아니오니까? 이 세상 작은 나라에도 이처럼 상과 벌이 뚜렷하거든 하물며 세상 만물을 내신 천주대군이겠습니까?>

 

<천주학이 바른 도이면 어찌 죽은 부모께 지내는 제사를 금한단 말이냐?>

<우리 성교회법에 제사는 천주께만 드리고 다른 조물에게는 지내지 못하는 법입니다.  나라에도 신하에게 드리는 공경이 따로 있어 임금께만 드릴 공경을 신하에게 드리면 단번에 역적으로 몰리지 않습니까? 장례 지내는 데도 나라에서만 하는 것이라하여 백성의 장례에는 금하는 것이 있지 않습니까? 저희는 비록 죽은 부모에게 제사는 못지낼 지라도 죽은 부모를 위하여 아침 저녁으로 생각하고 또 천주께 복락 주시기를 빌고 있습니다. 이를 보면 어찌 부모 공경을 아니한다 하오리까?>

 

(여중군자란 과연 이런 인물을 가림킴이라!) 속으로 감탄하며,

<너 그러지 말고 천주학을 않겠다는 말만 가만히 얼른 하여라. 그러면 너를 놓아보낼 터이니......>

<사또님, 그런 말은 두 번도 말아 주십시오. 어쩌면 그런 무서운 말씀을 하십니까? 천주는 우리를 생양보존하시고 우리를 위하여 영원한 복을 마련하시고 기다리시는 대군대부이시온데, 어떻게 그를 배반하여 배은망덕하고 불충불효한 대죄인이 되라고 하시나이까? 이는 충신에게 임금을 배반하라고, 효자에게 부모를 배반하라는 말과 일반입니다. 아무리 불량한 부모일지랃 자녀를 가르칠 때는 반드시 착한 사람이 되라고 하는 법인데 사또님은 백성의 부모가 되어가지고 자녀되는 백성에게 어찌 저러 악을 명하십니까!  저는 골백 번 죽어 몸이 천 조각이 날지라도 조물주 천주는 만만코 배반치 못하겠사오니 사또님께서는 속히 나라의 법대로 처리하여 주시기를 기다릴 뿐입니다. 사람이 세상에 한 번 나오면 한 번은 죽어야 하고 썩어야 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리고 몇 십년 더 살거나 몇 십년 덜 살거나 하는 것이 오십보 백보와 무엇이 다르오리까?  누구라도 아무 때든 한 번은 당하여야만 할 그 죽음을 무서워하여 대의를 거스리고 대은을 배반하면 누가 그 사람을 착하고 옳은 사람이라 하오리까! 사또께서 지금 나라의 은혜를 태산같이 입사와 나라의 녹을 잡수시고 계시온데, 이건 참 황송한 말씀이오나 만일 지금 적병이 쳐들어와 사또님을 붙들고서 임금을 배반하고 항복하여 적병을 섬기라고 하면 어찌 그대로 순종하실 수 있사오리까? 다행히 임금을 배반치 않고 순절하신다면 충신이 되실 것이고 잠시 생명을 아끼어 나라를 배반하고 항복한다면 역적이 되지 않겠습니까? 역지사지로 제가 지금 이 더러운 목숨을 아끼어 천주를 배반함이 과연 옳겠나이까! 저에게는 지금 효성을 다할 기회가 되었고, 이 세상 질고를 벗어나 영원한 천당으로 들어갈 때가 되었습니다. 이런 기회를 한 번 놓치면 다시 얻기 어렵습니다. 옛 성현이 말씀하시기를 덕이란 것은 몸이 괴로울 때 저축되는 것이요, 충성이란 것은 나라가 어지러울 때 나타난다 하지 않았나이까? 오늘, 사또님과 포졸 어른들은 제게 대하여 큰 은인이 되겠습니다. 속히, 법대로 형벌하여 주시고 죽여주시기를 고대하나이다. 이 더러운 목숨 아끼지 않겠나이다.>

 

<네 정 그렇다면 양인있는 곳이나 대어라. 너를 놓아줄 터이니......>

<사또님, 그것도 못하겠습니다. 어찌 나만 유익하려고 다른 사람에게 해를 끼치오리까! 양편이 다 유익한 것은 좋은 일이오, 한편은 유익하나 다른 편을 해롭게 하는 것은 한갖 더러운사욕에 지나지 않습니다. 내 농사를 잘되게 하려고 어찌 남의 밭에 해를 끼치겠사오며, 자기의 배만 불리려고 어찌 남의 재물을 토색질할 수 있사오리까?

자식된 자 어찌 자기 생명을 구구히 보존하려고 제 부모를 죽게 할 수 있으며 제자된자 어찌 자기의 편익을 생각하고 제 선생께 해를 끼칠 수 있사오며 그런 권고의 말인들 차마 할 수 있사오리까? 양인도 저의 선생입니다. 군사부일체라 하지 않습니까? 제 선생이요 부모되는 자를 이 자리에 고발하여 크게 의리를 거스리는 죄악을 어찌 범하오리까? 우리 성교 법칙은 차라리 죽을지언정 남을 거스려 범죄치 못할 것을 가르치고 있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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