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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정보

은퇴생활백서

by 라폴리아 2019. 7. 1.

은퇴생활백서

 

신입 시절에 한 선배가 이런 얘기를 했다.

"직장생활에서 사람은 많이 알게 될 것이다. 인간관계가 재산이다. 그러나 직장생활에서 배울 건 별로 없다.

모두 꿈에 부풀어 있었는데 배울 게 없다는 얘기에 고개를 갸우뚱했다.

실제 업무는 단순했고, 시간이 지나면서 정말 많은 사람을 알게 됐다.

휴대폰에 주소록이 천 명을 넘었다.

 

 

희미해지는 은퇴 전 인간관계


사람들은 사회에서 맺은 인간관계가 지속할 것으로 기대한다.

그러나 이해를 바탕으로 한 인간관계는 모래성과 같아서 은퇴하면 만남의 기회가 적어지고 희미해지며 결국 끊어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렇다고 동네에 마땅히 아는 사람도 없어서 은퇴자가 눈을 돌리는 것이 그동안 뜸했던 동창회다.

동창들은 같은 추억을 공유하고 있기 때문에 처음에는 잘 어울린다.

그러나 시간이 갈수록 가치관이나 관심사가 다름을 알게 되고 어떤 때는 정치적인 견해 차이로 다툴 때도 있다.

지난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도 한두 번이지 똑같은 얘기가 반복되면 그 만남 자체에 회의를 느낀다.

결국 동창회에 나가는 빈도가 점차 줄어든다.


할 일이 많은 사람들은 처음부터 인간관계에 스스로 거리를 두는 경우가 많다.

여러 사람을 만나면 하고 싶은 일을 잘 할 수 없거나 제약을 받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예 사회생활을 접은 것이다.

 

법정 스님도 그런 분이다. 스님은 생전 본인이 창건한 길상사에서 법회를 가졌지만 끝나면 어김없이 오대산 암자로 향했다.

 

주위 사람들이 전하는 말에 의하면 스님은 단 하루도 길상사에 머무르지 않았다.

왜 오랜 기간을 혼자 있으려고 했을까. 산중에서 얼마나 외로워했을까.

그러나 그건 범인의 생각이고 스님은 오히려 혼자 글을 쓰는 게 편했던 것 같다.

주변은 틈틈이 정리해두는 게 좋다.

나중에 남에게 자신의 짐을 정리하게 하는 것도 폐를 끼치는 일이다.

지난 날의 추억이 담겨있는 사진이나 물건은 본인한테나 중요하지 남에게는 그저 짐일 뿐이다.

법정 스님은 관계에 거리를 두고, 혼자서 지내며 하고자 하는 일에 집중하였다.

길상사에서 법회를 마친 후 항상 오대산 암자로 향하셨다고 한다


  

공부나 봉사 모임으로 관계 재정립을

 

인간관계도 마찬가지다.

은퇴 후 만나는 사람이 많으면 좋을 것 같지만, 자칫 몸과 마음을 상하기 쉽다.

만날 수 있는 시간도 제한적이다.

그래서 관계도 정리가 필요하다.

그렇다면 어떻게 정리하는 것이 좋을까.

사람마다 생각이 달라 일률적으로 판단할 수 없는 문제다.

 

은퇴 후에는 일로 만들어진 관계는 정리하고, 막연한 친목 모임보다 공부 모임이나 봉사 활동이 바람직하다.

  

다만 막연한 친목 모임보다 관심사가 같은 공부 모임이나 구체적 목적이 있는 봉사모임을 권하고 싶다.

또 어떤 사람과 함께 있을 때, 자리를 빨리 벗어나고 싶은 사람인지 아니면 시간을 좀 더 갖고 싶은 사람인지를 기준으로 삼을 수도 있다.

전자의 사람과는 거리를 두고, 후자의 사람과는 관계를 더 돈독히 하는 것이다.

 

어느 정도 각자의 기준이 만들어지면 다른 사람이 나의 영역에 넘어오지 않도록 펜스를 쳐야 한다.

이 말은 나 역시 다른 사람에게 방해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의미다.

이렇게 관계가 정리되면 그때부터 남은 시간은 온전히 자신을 위해 쓴다.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기록을 남기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은퇴 후에는 이처럼 여러 면에서 정리·선택·집중이 필요한 시기다.


백만기 아름다운인생학교 교장

 

[출처: 중앙일보 19.7.1일자] 은퇴하면 사람도 짐정리해야 할 모임 판별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