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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향기

눈의 차이

by 라폴리아 2009. 12. 24.

영화 '전쟁과 평화'에서 러시아 군이 프랑스군에 참패 당했을 때, 더블클릭을 하시면 이미지를 수정할 수 있습니다

러시아군의 안드레이 공작도 부상당한 채 다른 부상자와 전사자들에 섞여 쓰러져 있었다.

 

심한 부상에도 불구하고 그의 의식은 웬지 아주 또렷했다.

그는 통증 때문에 벌판에서 누운 채 눈을 겨우 뜨고 있었는데, 그 순간 실눈 사이로 하늘이 들어왔다.

부상자들의 신음만 간간이 들리는 죽음과 고요속에서도 하늘은 무한히 깊고 푸르렀다.

  

그때 갑자기 그는 자신과 하늘이 합일된 무아지경에 빠지면서 무엇과도 바꾸고 싶지 않은 황홀함과 그윽한 평화에 휩싸이게 된다.

 

그런데 순간 하늘이 보이지 않았다.

적의 영웅 나폴레옹이 그를 내려다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나폴레옹이 승전을 확인하러 전쟁터를 둘러보는 중에 부상당한 안드레이 공작에 다다른 것이다.

안드레이 공작은 자기를 내려다보는 사람이 비록 적이긴 해도 평소에 존경하던 영웅 나폴레옹이라는 것을 금방 알 수 있었다.

 

그러나 안드레이 공작의 입에서 나온 말은

“좀 비켜 주시오, 하늘이 안보입니다”

라는 한마디였다.

그토록 존경해온 천하의 영웅 나폴레옹도 하늘 아래서는 너무도 보잘것없는 한 점 그늘에 지나지 않았던 것이다.

한없이 깊고도 푸른 하늘의 황홀한 신비와 평화에 안긴 안드레이 공작에게 영웅은 아무런 의미도 없었다.

  

 옛 어느 우주비행사가 첫 우주비행 후 가진 기자회견에서

“하늘에는 하느님이 아니 계시더라” 고 했으나,

다른 우주비행사는 “하느님의 세계는 너무도 아름답다” 고 한 것을 보면,

「보아도 보지 못하는 눈의 차이」는 너무나 극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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