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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ㅣ자연ㅣ뉴스

32년만의 폭설에 갇힌 제주

by 라폴리아 2016. 1. 25.

 

제주도가 눈에 갇혔다. 한파와 눈보라, 강풍을 동반한 32년 만의 기록적인 폭설에 들어갈 수도, 나갈 수도 없는 ‘하얀 감옥’이 됐다. 제주공항은 23일 오후 5시50분부터 항공기 전면 결항 사태가 벌어졌다. 승객 9만여 명의 발이 묶였다. 한국공항공사는 24일 “제주공항의 모든 항공편 이착륙을 25일 오후 8시까지 중단한다”고 밝혔다.

눈발은 23일 오전부터 굵어지기 시작했다. 제주지방기상청에 따르면 이날 오후 8시쯤 제주 시내에 최대 12㎝의 눈이 쌓였다. 1984년 1월(13.9㎝) 이후 32년 만에 최대 적설량을 기록했다. 역대 기상관측 이래 세 번째로 많은 양이다.

대구에 사는 직장인 임병석(51)씨는 24일 오후 비행기로 돌아갈 계획이었으나 눈발이 거세지자 걱정돼 하루 먼저 공항에 나왔다. 임씨는 “비행편이 나오는 대로 돌아가려고 23일부터 공항에서 시작한 노숙이 2박3일을 채우게 생겼다”며 발을 동동 굴렀다. 임씨는 첫날 밤에는 공항 수하물센터에서 1만원에 파는 대형 종이박스를 구해 아내와 대학생 딸, 고등학생 아들 등에게 깔아줬다. 공항 로비에는 임씨 가족처럼 박스와 신문지 등을 깔고 잠을 청하는 승객이 수백 명에 달했다. 하지만 이튿날엔 제주도와 제주관광공사 측에서 박스 등을 수거한 뒤 스티로폼으로 된 매트와 담요 등을 제공했다. 일부 승객은 대합실에 텐트를 치기도 했다. 임씨는 “아쉬운 대로 잠자리는 해결됐지만 언제 돌아갈지 막막하기만 하다”고 말했다.

제주 서귀포에서 감귤 농장을 운영하는 서경원(43)씨도 23일 오후 제주공항에 있었다. 낮 12시10분 김포행 비행기를 탔지만 점심도 거른 채 5시간 넘게 비행기 안에 갇혀 있었다. 결국 오후 6시가 넘어 공항 로비로 돌아왔다. 그는 “아무 안내도 없었고 사람들은 극도의 아노미 상태였다”고 말했다. 서씨는 2시간30분 이상 기다린 끝에 간신히 택시를 타고 숙소로 돌아갔다. 관광객 김진희(43)씨도 “초등학생 아이 2명과 7시간 동안 비행기에 갇혀 있었다”며 “처음부터 비행기에 태우질 말았어야 하는 것 아니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날 공항 로비는 성난 체류객 6,000명(오후 8시, 한국공항공사 추산)으로 빽빽했다. 이들은 오후 늦게 전 항공편 취소와 활주로 폐쇄 소식이 전해지자 분통을 터뜨렸다. 특히 23일과 24일 이틀 동안에만 6,700여 명의 중국인 관광객이 제주에 들어온 상태였다. 상하이에서 온 리리(34·여)는 “중국으로 돌아가는 길이라서 숙소도 못 잡고 종일 공항에서 대기했다”며 “말이 통하지 않아 이중의 고통을 당했다”고 말했다. 일부 중국인 관광객은 숙식 제공 문제를 요구하다 항공사 카운터까지 점거하고 의자를 내던지기도 했다. 공항은 순식간에 아수라장으로 변했다. 편의점의 김밥·우유 등은 바닥이 났고 공항 내 식당에선 100m씩 줄 서는 게 예사였다.

공항 푸드코트 아르바이트생 장모(20)씨는 “2시간 이상 기다려야 겨우 밥을 먹을 수 있었다”고 전했다. 특히 공항에서 대기하던 수천 명이 한꺼번에 숙소 잡기에 나서면서 큰 혼란이 빚어졌다. 택시비는 부르는 게 값이었다. 개인 택시기사 박모(49)씨는 “100여 명의 손님 중 일부를 공항 근처에 있는 찜질방으로 데려다줬는데 4㎞ 정도 운행해 3만원을 받았다”고 말했다.

이날 택시나 대중교통, 제주도가 제공한 40여 대의 전세버스로 5,000여 명이 시내 숙소 등으로 빠져나갔다. 공항 밖으로 나가길 포기한 1,000여 명은 밤새 공항에서 새우잠을 자야 했다. 첫 출근을 하루 앞두고 제주공항에 갇힌 김모(26)씨는 “1년 만에 겨우 취직했는데 첫날부터 못 가게 돼 발만 동동 구르고 있다”며 “결항증명서 등 서류는 준비했지만 첫인상이 나쁘게 박힐까봐 걱정”이라고 말했다.

23일에 이어 24일에도 제주에 한파주의보가 발효됐다. 한파주의보 발효는 2009년 3월 13일 이후 7년 만이다. 한라산 윗세오름에는 이날 오후 9시까지 135㎝의 눈이 쌓였다. 한국공항공사는 항공편 운항이 정상화될 수 있도록 활주로 제설 작업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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