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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ㅣ자연ㅣ뉴스

종교인 면세는 도덕적 탈세

by 라폴리아 2014. 12. 31.

종교인 면세는 도덕적 탈세다.

손봉호 고신대 석좌교수 나눔국민운동본부 대표

 

   건국 이후 처음으로 2015년부터 실시하기로 했던 종교인 과세가 또 1년간 유예되었다. 종교인들 가운데 목소리 큰 사람들과, 그들이 마치 모든 종교인을 대변하는 것으로 착각하고 정치적 이해를 저울질한 정치인들이 합작한 졸작이다.
정부는 종교계에 특혜를 베풀었고 그들 종교인들은 승리를 거둔 줄 착각하겠지만, 이번 결정은 한국 종교들에 또 하나의 치욕을 안겨 주었다. 합리적 근거가 없는 면세는 도덕적으로는 탈세며 도둑질과 다름없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은 특정 종교의 교리가 아니라 국민이 합의해 제정한 헌법에 의해 통치되는 세속국가다. 모든 국민이 예외 없이 법 앞에서 동등한 권리를 향유하고 동등한 의무를 수행해야 한다. 법적으로는 종교인과 비종교인, 성직과 세속 직의 구별이 있을 수 없다. 세금은 누구나 다 바치기 싫어하지만 반드시 바쳐야 하는 법적인 의무이므로 대통령도, 노동자도, 시인도, 성직자도 예외가 될 수 없다. 더구나 개신교에서는 모든 직업은 하나님의 소명이므로 사회에 해를 끼치지 않는 한 모든 직업은 다 성직으로 본다. 성직은 다른 직업과 달리 노동이 아니란 주장은 근거도 없고 노동을 폄하하는 잘못이다.

 

 개신교의 경우 목회자들의 약 70%는 소득이 너무 적어 과세 대상이 될 수 없다. 그리고 나머지 약 30% 가운데 일부는 이미 자진 납세하고 있고 그분들은 모두 신도들의 존경을 받고 있다. 개신교 신자들뿐 아니라 일반 사회로부터도 존경받았던 고 한경직 목사와 고 옥한흠 목사는 처음부터 자진해서 세금을 냈다. 지금 면세혜택을 추구하는 종교인은 소수에 불과하다. 그들은 목소리만 클 뿐 그 종교의 실질적인 대표도 아니고 신도들 다수의 뜻을 대변하지도 않는다.

 면세와 같은 세속적 이익을 정치 세력 때문에 받는다면 이는 종교의 본질에 어긋날 뿐 아니라 종교에 큰 해를 끼친다. 비록 이 세상은 돈·권력·인기에 의해 운영되지만 그것이 바람직하고 이상적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종교는 이런 것 대신에 사랑·정의·평화·관용·희생 등 모든 사람에게 이익이 되고 모든 사람이 아름답다고 인정하는 가치를 전파하고 실천함으로써 그 존재 가치와 근거를 증명해야 한다. 그러므로 종교는 가난하고, 무력하고, 희생당하고, 핍박받을 때 오히려 순수하고 강해지며, 그럴 때만 사회에 진정한 소금과 빛의 역할을 감당할 수 있다.


 그러나 만약 종교가 그런 고급 가치 대신 돈·권력·인기 같은 세속적인 가치를 탐하고 그것을 이용하면 이미 종교의 자격을 상실하고 타락하게 된다. 그런 종교는 아무 소용없게 되어 조소와 냉소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다. 종교현상학자 판 델 레이유(G. van der Leeuw)는 “마술은 지배하는 것이고 종교는 섬기는 것”이라 했다. 종교가 희생하고 섬기는 대신 세속적인 힘으로 지배하면 마술로 변질되고 마는 것이다. 신도 수와 정치적 영향력 때문에 종교인이 면세혜택을 누린다면 그것은 그 종교가 이미 마술로 타락했음을 증명하는 것이다. 종교인들이 면세혜택을 받는 한 그들과 그들의 종교가 순수해질 수도 없고 사회에 이익을 끼칠 수도 없다.

 납세의 대상이 될 수 있는 소득을 향유하면서도 면세혜택을 받는 것은 심각한 부도덕이다. 국방·교육·치안·복지 등 국가의 모든 중요한 임무는 세금으로 수행되고 모든 공공시설도 세금으로 설치되고 유지·보수된다. 그런 업무수행과 시설 없이는 우리는 생존할 수도 없고 의미 있는 삶을 누릴 수도 없다. 그런데 그 혜택을 다 누리면서 그 짐은 지지 않는 것은 무책임하기 짝이 없는 무임승차다. 피땀 흘리며 일한 노동자가 바친 세금으로 학교를 세우고 운영하며 그 세금으로 도로를 닦고 유지하는데, 그 학교에 자녀를 보내고 그 도로 위로 차를 몰고 다니면서 자신은 세금 한 푼도 내지 않는 것은 얼마나 뻔뻔한 짓인가?

 신도들이 이미 세금을 바치고 남는 돈으로 헌금한 것이기 때문에 그 돈에서 사례를 받는 종교인이 세금을 내면 이는 이중 납세란 주장이 있다. 그러나 그런 주장은 교회나 사찰 등 종교 기관에 해당되지 그 기관에서 일하는 사람이 받는 소득에는 해당되지 않는다. 예를 들어 복지기관에 기부한 돈도 세금을 바친 후에 보낸 것이다. 물론 복지기관은 그 기부소득에 대해서는 세금을 내지 않는다. 그러나 그 복지기관에서 일하는 복지사들은 비록 그 기부금에서 월급을 받더라도 세금을 내고 있다. 교회나 사찰 등 종교기관이 신도들로부터 받은 헌금에서 세금을 내지 않는 것은 당연하고 그것은 세계 어느 다른 나라에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상당한 소득을 누리는 종교인들이 세금을 내지 않는 선진국은 없다.

 부디 바라기는 아직도 납세하지 않는 종교인들은 개인의 자존심과 섬기는 종교의 명예를 위해서라도 내년부터는 자발적으로 납세함으로써 이런 창피스러운 문제가 다시 불거지지 않는 것이다.

 

2014.12.31일자 중앙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