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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ㅣ자연ㅣ뉴스

가계소득 쪼그라들면 '잃어버린 20년' 닮는다

by 라폴리아 2014. 7. 25.

가계소득 쪼그라들면 '잃어버린 20년' 닮는다.

 

대기업 수출 중심 발전전랙 한계....

성장기여도 줄고 사회불균형 심화.... 

생산인구 줄면 장기불황 빠질 수도....

내수 활성화에 정책 초점 맞춰야....

 

업무상 통계지표를 자주 접하게 되는데, 우리나라의 경제사회 지표를 다른 나라와 비교하다 보면 눈에 띄는 특징이 있다. 그것은 여러 비교 대상국 중 우리나라가 양극단, 즉 최상위 그룹이나 최하위 그룹에 위치하는 경우가 많다는 점이다. 이는 한국 경제나 사회에 부문 간 불균형이 크다는 것을 시사한다. 예를 들어 한국은 국내총생산(GDP) 내 제조업 비중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중 가장 높고, 서비스 비중은 가장 낮다. 가계소득 부진도 그런 사례 중 하나다. 2000년 이후 경제성장률과 가계소득 증가율 혹은 내수 증가율 간의 격차를 비교하면 한국이 OECD국가 중 가장 격차가 큰 편이다. 한국 경제의 가계소득 혹은 내수의 부진은 경기순환적 현상이라기보다 외환위기 이후 지속돼 온 구조적 문제다.

개발시대 한국 경제의 성장은 불균형 성장전략에 맞춰져 있었다. “많지 않은 자원을 모두에게 조금씩 배분하기보다 잘될 사람에게 집중적으로 몰아주고 이들이 전체 경제의 성장을 견인하는 것이 효율적”이라는 구상이었다. 그 결과 일부 대기업이 선택되었고, 정부는 이들 대기업이 빈약한 내수시장보다는 수출에 초점을 맞추도록 유도했다. 특히 외환위기 이후 경상수지 흑자와 외환 확보에 대한 집착, 글로벌화의 진전과 중국 특수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수출 대기업 중심의 성장 구조는 더욱 심화되었다. 실제로 민간소비의 성장기여율은 1970~97년 평균 50%에서 2000년 이후 42%로 낮아졌다. 반면 재화 수출의 성장기여율은 같은 기간 중 39%에서 88%로, 재화 순수출(수출·수입)의 성장기여율은 4%에서 25%로 크게 높아졌다.

이처럼 경제성장에서 내수의 기여도가 줄고 제조업 수출의 비중이 커지면서 수출 경쟁력이 경제정책 수립에서 우선적인 잣대가 됐다. 수출경쟁력을 위해 임금 상승은 낮을수록 좋고, 비정규직은 자유롭게 늘릴 필요가 있었다. 환율은 상승속도가 너무 빠르지 않다면 높은 것이 좋고, 주력 제조업 수출 확대를 위해 농업이나 일부 서비스업의 피해는 불가피한 것으로 간주됐다.

이러한 전략은 자연히 생산성 상승을 밑도는 임금소득 부진과 자영업의 침체를 낳았다. 임금소득과 자영소득을 기반으로 하는 가계소득 부진(가계·기업소득 간 불균형), 가계소비를 기반으로 하는 내수 부진(내·외수 불균형)과 서비스산업 부진(제조업·서비스 간 불균형)은 모두 그러한 전략의 결과다.

가계소득과 내수의 부진은 우리 경제의 구조적 특징과 연관된 문제다. 단순한 경기순환적 대응으로는 일시적인 효과밖에 거두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 문제의 근본적 해결을 위해서는 예컨대 임금을 수출경쟁력의 편향적 관점에서 바라보는 시각에서 벗어나 내수와 가계후생의 기반이라는 측면에 더 큰 가중치를 두는 관점으로 옮겨갈 필요가 있다.

물론 이 같은 변화가 쉽지는 않다. 변화는 위험과 불확실성을 수반하는 반면 기존 전략은 상당한 성과를 보여 왔기 때문이다. 반도체·가전·휴대전화·조선·자동차 등 수출주력산업에서 한국 기업은 세계시장의 주도자로 부상하는 성과를 거두었다. 또 금융위기 이후 제조업의 중요성이 재평가되면서 한국의 높은 제조업 비중과 수출경쟁력은 다른 나라에 선망의 대상이 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제는 수출 대기업에 편향된 성장전략의 수정이 불가피한 시점이다. 수출이나 제조업이 중요하지 않다는 게 아니라 기존 성장구조가 낳는 비용이 편익보다 커지고 있다는 점에서 수정이 요구되는 것이다.

 

그 몇 가지 이유를 들면

첫째, 세계 금융위기 이후 수출주도 성장의 효력이 약화되고 있다. 2000~2008년 우리 수출은 연평균 12%의 증가를 보였지만, 이제 두 자릿수 증가를 지속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세계경제가 회복세임에도 올 들어 6월까지 수출증가율은 2.6%에 불과하다. 최근 수출의 성장기여도는 금융위기 이전의 3분의 2 수준에 머물고 있다.
둘째, 해외생산의 확대 등 대기업의 글로벌화가 진전되면서 이들의 성과가 국민경제로 파급되는 효과도 축소되고 있다.

셋째, 불균형이 누적되면서 그 비용이 한계수준에 이르고 있다. 가계소득 부진이 가계부채 문제로 이어지고 있는 것이 단적인 예다. OECD 최하 수준의 출산율이나 최고 수준의 자살률도 이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넷째, 2016년이 되면 한국의 생산가능인구는 감소세로 전환된다. 일본 같은 장기 내수 침체를 피하기 위해서도 내수 부진 해소를 더 이상 미룰 수 없다.

100년 전인 1914년 헨리 포드는 경쟁력 하락을 우려하는 주변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임금을 두 배로 올리는 파격적 결정을 내렸다. 이는 미국 중산층의 창출과 더불어 자동차 대중화 시대의 개막으로 이어졌다. 헨리 포드의 성공은 고정관념에서 탈피한 혁신적 발상, 현실에 대한 정확한 인식, 변화 의지와 실행력이란 세 요소가 뒷받침된 결과라 할 수 있다. 한국 경제의 내수 부진 타개를 위한 경제정책이야말로 이 세 가지 덕목이 절실하게 필요한 영역이 아닐까 싶다.

중앙일보 2014.07.25 강두용 산업연구원 동향분석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