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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ㅣ자연ㅣ뉴스

개는 차별하지 않는다, 순종 잡종을.

by 라폴리아 2014. 1. 6.

개는 차별하지 않는다, 순종·잡종을… 오로지 인간 만이 차별할 뿐

 

'복종=약하다' 편견 깨라
인간은 자신의 목적 위해 거짓말에 꼼수까지 동원... 개들이 보면 비웃지않을까.

문제견? 사람이 문제
애완견 키우는 사람들… 개를 마치 사람처럼 대하는 게 최대의 실수

개팔자가 상팔자?
패리스 힐턴의 개처럼 치장해준다고 행복하겠나, 개들에게 필요한 건 운동

 

(사진)23년간 개 조련… 세계서 가장 유명한 '개심리치료사' 시저 밀란

지친 하루의 일과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올 때면 항상 이들이 생각난다. 몽글몽글한 털, 언제나 주인을 반기는 모습, 절대 배신을 모르는 충성스러운 자세…. 가만히 안고 있으면 따끈한 온도에 그간 피로도 다 녹아드는 것 같다. '반려견'으로 지칭되는 애견들은 어느새 우리 생활에 깊숙이 파고들면서 일부는 우리의 아이처럼, 혹은 액세서리처럼 취급되곤 했다.

하지만 이들의 삶이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정말 행복할까? 우리가 받는 기쁨만큼 이들도 자신이 '잘 살고 있다'고 느낄까? 개의 마음을 읽는 사람으로 유명한 미국의 유명 개심리치료사이자 훈련사인 시저 밀란(45)은 이렇게 답한다.

"그건 당신만의 착각이다!" 인간이 해주는 사치스럽고 호화스러운 행동은 개에게 그다지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인간 사회에서 흔히 말해 '잘나간다'는 사회적 리더도 개 하나 제대로 다루지 못해 곤욕을 겪는 일도 적지 않다. 

 

인간이 대체 무슨 잘못을 하고 있기에 인간의 평생 친구이자 반려견으로 불리는 개들에게 이렇게 받아들여지는 것일까. 개들이 보는 것은 대체 무얼까. '아웃라이어' '블링크' 등의 베스트셀러 작가 말콤 글래드웰은 이러한 의문을 출발점으로 '그 개는 무엇을 보았나'라는 책을 썼다. 광폭한 개들도 시저 밀란만 만나면 얌전해지는 모습을 보고 '대체 우리와 차이가 무얼까' 하고 시작한 에피소드가 이 책의 제목이 됐다. 2004년부터 현재까지 내셔널지오그래픽 채널에서 '도그 위스퍼러'라는 프로그램을 진행하면서 '개들의 신'처럼 인정받고 있는 시저 밀란의 스토리가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것이다. 2010년 발간된 이 책은 뉴욕타임스 24주 연속 베스트셀러, 아마존 논픽션 베스트셀러 등에 오르며 화제가 됐다.

정말 그 개는 무엇을 보았을까. '도그 위스퍼러' 시리즈로 에미상 후보에도 올랐던 시저 밀란에게 이메일로 물었다. 정말 그 개는 무엇을 보았고, 우리가 하고 있는 잘못은 무엇이었냐고. 시저 밀란은 "인간의 가장 큰 잘못은 상대의 시선이 아닌 자기 중심적인 잣대로 모든 일을 파악하는 데 있다"며 "한마디로 말해 문제 견의 문제점은 개가 아닌 바로 인간에게 있다"고 강조했다.

"항상 상대의 시선으로 나를 바라봐라"
그는 "개는 인간처럼 사람을 숫자로 보지 않는다"며 "개한테 초호화 시설을 안겨주며 '너는 최고로 행복해'라고 말하는 사람처럼 우스운 것도 없다"고 말했다. 개들은 주인에게 수백만달러의 재산이나 바닷가 별장이 있든 없든 상관하지 않는다. 오스카상을 받든 출연하던 텔레비전 프로그램이 없어지든 관심이 없다는 것이다. 문제는 인간이 개를 자신과 동질화시키고 인간처럼 다룰 때부터 시작된다.
"호텔 상속녀이자 연예사업가인 패리스 힐턴이 자신의 개에게 팅커벨이란 이름을 붙여주고 온갖 치장을 한다 한들 이 개가 정말 행복해 할 것 같은가? 개들한테는 '웃긴 얘기'일 뿐이다. 개들이 진짜 필요로 하는 것은 넘치는 에너지를 소비할 수 있는 운동이다. 개들 사이에 순종(純種)이란 건 인간으로 치면 남들보다 조금 비싸 보이는 옷을 걸쳤을 정도의 차이다. 아름다운 순종 개나 우스꽝스럽게 생긴 똥개나 가죽 아래는 다 똑같다. 개들은 서로 차별하지 않는데 그걸 인간이 스스로 차별하고 있다."
그는 "문제가 생기면 상대는 과연 어떤 시각으로 파악하고 있을까를 먼저 생각해야 한다"고 답했다. 23년간 개를 다루며 그가 배운 것이 바로 '개의 눈으로 보자'였다고 했다. 그걸 깨닫는 데도 10년이 넘게 걸렸다. 생각을 바꾸니 해답이 쉽게 보였다. "자기의 눈에 보이는 것만으로 문제를 파악하고, 그걸 상대에게 강요하는 것이 모든 문제의 출발점이다. 그 시작을 상대의 시선으로 바꿔보니 나의 생각과 행동이 모두 바뀌었다."
전 세계를 다니며 강연을 다니는 그에게 가장 많이 들어오는 질문 중 하나는 "개와 개 같은 인간 중 누굴 고르겠느냐"는 말이라고 했다. 그는 "당연히 개"라면서 "개 같은 인간보다 개들이 훨씬 처신을 잘한다"고 말했다. "동물의 세계에는 도덕이라는 게 없어서 선악이 구분되지는 않는다. 쿠바 정치인 피델 카스트로 같은 지도자가 테레사 수녀를 누르고 지도자가 되는 것이 동물의 세계에선 응당 벌어질 수 있다. 하지만 거꾸로 동물들은 권력을 얻기 위해 속이거나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왜냐? 다른 동물들이 눈 깜짝할 사이 눈치 채기 때문이다."

◇'
복종=약하다'는 시선을 깨자
시저 밀란은 "개들도 안 하는 일을 우리 인간은, 정치인이든 좀도둑이든 자신의 목표를 이루기 위해 죄의식 없이 저지르는 경우가 많지 않으냐"며 "개들이 보면 정말 '무식하다'며 비웃을 일"이라고 말했다. '꼼수'가 개들의 세계에선 통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개에겐 본능적으로 거짓을 읽을 수 있는 능력이 있고, 서로서로 감시를 하며 일단 우두머리가 된 자에겐 '절대복종'을 표한다. 시저 밀란은 "여기서 복종이라 함은 약함이나 무능함을 말하는 게 아니라 추종자의 심리 상태를 나타내는 것"이라며 "무리지어 생활하는 이들 사이에서 위계질서가 제 기능을 하려면 어느 정도 지배와 복종 관계가 확립돼야 한다"고 말했다. 개들은 분명 그걸 알아서 하고 있고, 인간 사회 역시 무리지어 생활하는 이들과 크게 다름없는데도 우리 사회가 제 기능을 하지 못하는 건 지배·복종에 대한 자세가 확립돼 있지 않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는 '복종=약하다'고 바라보는 시선도 깨라고 했다. "저마다 마음 내킬 때 출근하고 점심때에 4시간씩 자리를 비우며 온종일 상사나 직원들끼리 말다툼을 한다면 사무실 꼴이 어떻겠는가. 혼돈 그 자체다. 하지만 제시간에 출근해 동료와 잘 지내고 갈등을 일으키지 않는 직원을 '약하다'고 하지 않는다. 오히려 협조적이고 좋은 팀원으로 꼽힌다. 동물 사회가 바로 그런 것이다."
그는 무리를 지어 다니는 개를 보면서 '복종에 대한 수용'을 읽었다고 했다. "'팀'이 존재하려면 직원들은 마음속으로 복종을 수용하는 자세가 있어야 한다. 상사가 어떤 결정을 내릴 때 부하는 그것을 따르는 것이 자기 본분이라는 것을 은연중에 인정하는 것이다. 개들은 그런 체계로 움직이고, 사람들도 그런 식으로 움직일 거라 생각한다. 하지만 실제 그런가? 개들 눈으로 볼 때 이는 혼란 그 자체다."

'조용하면서도 단호한(calm-assertive)' 리더가 최고의 우두머리
그는 21세 때 100달러를 들고 멕시코에서 불법으로 국경을 넘었다. 할리우드 진출이 그의 꿈이었다. 미국 샌디에이고에 도착해 두 달여간은 고속도로 옆에서 노숙했다. 운 좋게 애견 미용실에 취직했는데 주인들이 개를 다듬고 입히는 데 엄청난 돈을 지출한다는 걸 발견하고는 '이곳이 천국이다!'고 느꼈다고 했다. 하지만 개를 다루면서 느낀 건 오히려 개들이 행복하지 않다는 것이었다.
―오프라 윈프리를 비롯해 폭스·디즈니 CEO 등 내로라하는 사람들이 당신의 고객이다. 사람 다루는 데 탁월한 리더들인데 개는 왜 못 다루는가.
"부하에게 온갖 지시를 하면서 사람에게 지친 이들은 주로 애완견에게 모든 것을 쏟아내 위안을 얻으려고 한다. 개와 함께 뒹굴면서 포근함을 느끼고 마음의 치유를 얻게 되는 것도 사실이다. 개 앞에서 자신이 얼마나 뛰어나고 훌륭한지 증명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에 '사람보다 나은 친구'라 생각하기 쉽다. 예를 들어 오프라 윈프리는 '소피(개)는 내 배 아파서 나은 애예요'라고 말할 정도로 자기 핏줄처럼 대했다. 하지만 그저 예쁘다고 개가 자기 마음대로 집안을 엉망진창으로 만들게 놔두고, 온갖 응석을 받아주는 데 시간을 다 쓴다면 개의 판결은 단 하나다. '쟤(오프라 윈프리)는 나의 추종자.' 결과는 뻔하지 않은가."

―그렇다면 동물 사회에선 어떤 리더가 각광받는가. 당신 말대로 힘만 있다면 독재자가 영원히 지배할 것 같다.
"물론 개들이 지배적인 리더를 따르는 건 사실이다. 여기서 지배라는 단어가 어떠한 잔인한 이미지를 불러오기도 한다. 재밌는 건 동물세계에는 잔인함이란 어휘가 존재하지 않기도 하다. 지배란 도덕적인 판단이나 감정적인 체험이 아니고, 짝짓기나 식사 놀이처럼 자연스러운 행동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독재자는 오래가지 못한다. 힘있는 자는 그보다 더 힘있는 자가 나타나면 바로 위치가 바뀐다. 가장 선호하는 리더는 침착하고 자신 있는 성품의 리더다. 좌중을 압도하는 낮고 굵은 목소리, 위엄있는 말투, 감정선을 드러내지 않는 모습 등을 갖춘 리더를 가장 선호한다. 인간 사회도 이는 비슷하지 않을까?"

"문제견? 문제는 주인"
―사람들이 흔히 하는 실수가 무엇인가.
"개를 사람처럼 대하는 것이다. 특히 자기 자식처럼 혹은 자식보다 더 예뻐하는데 이것이 훈육에서 가장 문제시되는 것이다."

―개를 키우다 보면 자연히 가족으로 받아들이게 된다. 주변을 봐도 '우리 아들' '우리 집 막내'라며 개를 소개하는 경우를 적지 않게 본다.
"애정을 주는 건 문제가 없지만 문제는 순서이다. 운동을 시키고, 훈련을 시킨 다음 애정을 쏟아야 한다. 개에겐 친구가 아닌 우두머리가 필요하다. 개는 무리 지어 생활하는 동물 중 하나다. 이들에겐 위계질서가 필요하고 어느 정도 지배와 복종 관계가 확립돼야 한다." 

 

출처 조선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