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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ㅣ자연ㅣ뉴스

윤대통령 문대통령이 만든다

by 라폴리아 2020. 9. 4.

[조선일보] 2020.06.23 김광일 논설위원

 

삼인성호(三人成虎)라는 말이 있다. 예를 들어 세 사람이 차례로 와서 남대문 시장에 호랑이가 나타났다고 하면 결국 그런 얼토당토않은 거짓말을 믿게 된다는 뜻이다. 첫 사람이 말할 때는 에이 무슨 말도 안 되는 말을 하고 있어, 하고 부인하다가도, 두 번째 사람도 세 번째 사람도 남대문 시장에 호랑이가 나타났다고 하면 드디어 믿게 된다는 뜻이다. 아니라고 할수록 나도 모르게 호랑이가 눈앞에 보이는 것 같고, 곧 어흥 하고 나타날 것 같기 때문이다. 비유적으로 생각해본다면, 호랑이가 나타날 것이라고 호도하고 있는 사람들은 바로 여당 쪽 의원들이고, 그 호랑이는 공수처 수사 대상 1호가 될 것이라는 윤석열 검찰총장이다. 여당 쪽 사람들은 본인들도 믿지 않고 설마 했겠지만, 세상일은 묘하게 돌아가는 법이어서 정말로 윤석열 호랑이가 어흥 하고 나타날 수도 있다.

 

더불어 민주당 김용민 의원이 이렇게 말했다. "(윤석열 검찰총장은) 검찰 개혁의 필요성을 보여주는 (나쁜 의미에서) 상징적 인물이다." "(그는) 역사상 최악의 총장이 될 것이다." 오늘 한 신문 칼럼은 이렇게 말했다. "길가는 사람 붙잡고 내달 출범하는 공수처 수사대상 1호가 누구냐고 물어보라. '윤석열' 석 자가 자동으로 튀어나온다." 우리에겐 어느새 이런 프레임이 생겼는데, 그런 "공수처가 오히려 부메랑이 될 수 있다"고 칼럼은 역으로 꼬집어 말하고 있다. 윤석열의 목을 치려고 했던 공수처가 오히려 자신들의 목을 겨냥할 수도 있다는 뜻이다. 프랑스 혁명 때 단두대가 그러했다.

민주당 김남국 의원은 윤석열 총장이 한명숙 사건과 관련된 진정 조사를 대검 인권부에 맡긴 것을 비난했다. 앞서 말한 김용민 의원과 김남국 의원은 둘 다 민변 출신이다. 둘은 조국 수호에 앞장섰던 사람들이다. 이제 국회의원이 됐고, 윤석열 총장에게 대들고 있다. 그런가 하면 최강욱 열린민주당 대표는 조국 아들에게 허위 인턴 증명서를 내준 혐의로 기소된 바 있는데, 그는 윤석열 총장이 채널A 기자 사건을 수사자문단에게 검토하도록 의뢰한 것을 두고 "뻔한 술수"라고 했다. 조국 전 법무장관이 자신의 인사 1호로 법무부 인권국장에 임명했던 황희석 열린민주당 최고위원은 윤석열 총장과 수사자문단을 두고 "본인도 관여돼 있어서 그런 것인가"라고 했다.

지금 거론한 김용민, 김남국, 최강욱, 황희석, 이런 사람들은 모두 '조국 키즈'라고 할 수 있다. 조국 수호에 앞장섰던 사람이거나, 조국 씨에 의해 발탁되고 인사검증을 받은 사람들이다. 그렇다면 이들이 정말로 윤석열 총장이 벌벌 떨 만큼 날카로운 칼끝을 들이대고 있는 것인가. 절대 그렇지 않다. 본인들도 알고 있을 것이다. 본인들은 엑스트라일 뿐이다.

 

지금 상황이 윤석열 총장 대 추미애 법무장관처럼 보이는가. 그것 역시 잘못 봤다. 추미애 장관도 엑스트라다. 추미애 장관이 인사권을 활용해서 윤석열 사단을 "참치 해체하듯" 해체하고, 최측근 참모들을 전국 각지로 하방(下放)하고, 장관과 총장 사이의 인사 협의 관행을 단박에 폐기하고, 검찰 내 요직을 호남 검사들로 싹쓸이하게 해서 정권 측 지지기반으로 물갈이한 것 등등은 맞지만, 그렇다고 추미애 장관이 윤석열 총장의 맞상대가 되고 있다고 본다면 그것은 거대한 착각이다. 뒤에 말하겠지만 문 대통령은 추 장관에게 오히려 불만스러울 것이다.

 

정치란 대척점끼리 움직인다. 한국 정치 에너지는 양쪽 끝에서 발생한다. 마치 N극과 S극처럼 그렇게 맞물려 돌아가는 특성이 있다. 이쪽 끝에 문재인 대통령이 있다면, 저쪽 끝에 윤석열 검찰총장이 있다. 너무 과장하는 것 같은가. 그렇지 않다. 다른 것은 다 떠나서 청와대의 울산 선거공작 사건 하나만 놓고 봐도, 검찰 총수 윤석열과 청와대 주인 문재인은 서로 만나지 않을 수가 없다. 울산 선거공작 사건 공소장에는 '대통령'이란 단어가 무려 40번 가까이 등장한다. 한번 가동된 공소장은 멈출 수가 없다.

그래서 윤석열 총장도 원치 않았는데, 심지어 김종인 야당 비대위원장도 원치 않았는데, 그리고 윤석열 총장을 지지 성원하는 국민들도 차마 그렇게 기대하고 있지는 않았는데, 지금과 같은 문 대통령의 행동과 발언이 계속 된다면 전혀 예상치 못했던 정치 구도가 형성될 수 있는 것이다. 윤석열을 "공수처 수사대상 1"라고 저주를 퍼부었던 사람들은 꿈에서도 상상하지 못했던 일이 벌어질 수 있다. 자신들이 윤 총장에게 퍼부었던 프레임과 저주가 부메랑이 되어, 다시 말해 공수처의 저주가 되어 "윤석열 대선후보 1"가 되는 길을 열어줄 수도 있다는 것을 꿈에도 알고 있지 못할 것이다.

 

거듭 말하지만, 지금은 어렴풋하게 보일지 몰라도, 정치의 특성을 알고 보면, 결국 이쪽 끝에는 문재인 대통령이, 저쪽 끝에는 윤석열 검찰총장이 있을 수밖에 없다. 그 두 사람 사이에 등장하는 입들, 마우스(mouth)들은 모두 엑스트라다. 문재인 대통령은 추미애 법무장관에게 고마워하고 있을까. 천만에 그렇지 않다. 정권의 오너들은 속성 상 절대 이런 식으로 전개되는 것에 고마워하지 않는다. 문 대통령은 추미애 장관이 윤석열을 확실하게 잠재우지 못한 것에 불만이 있을 뿐이다. 검찰 개혁이고 뭐고 다 허울 좋은 쇼일 수도 있는 것이고, 다만 문 대통령이 봤을 때 추 장관은 대통령이 40번 거론된 울산 선거공작 공소장을 막지 못한 무능한 장관일 뿐이다. 정치 오너란 그런 것이다. 정치 오너는 누군가 책임을 물어야 할 희생양이 필요하다. 그 사람이 바로 추 장관일 수 있다. 추 장관은 어제 밤 깊은 고민에 빠졌을 것이다. 그러지 않았다면 추 장관은 지금 사태를 잘못 읽고 있는 것이다. 지금 전개되고 있는 프레임은 절대 추미애 장관에게 유리하지 않다. 정권은 언젠가 추 장관에게 책임을 묻게 되고, 그는 무대에서 사라질지 모른다. 남는 사람은 여전히 윤석열 총장이다.

그래서 문대통령은 본인도 모르는 사이에 '윤대통령' 후보 만들기를 하고 있는 셈이다. 김종인 통합당 비대위원장은 윤석열 대권 카드 가능성을 묻자 이렇게 말했다. "자기가 생각이 있으면 나오겠지." 음미할 대목이 있는 말이다.

 

윤석열 퇴진을 공론화 했던 가장 커다란 입을 가진 정치인은 민주당 설훈 최고위원이었다. "내가 윤석열이면 벌써 그만 뒀다"고 했다. 그러자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는 이렇게 말했다. "어떻게 하면 고양이(윤 총장)의 목에 방울 달까 궁리하다가, 뾰족한 수가 없으니 구멍에서 목만 내놓고 조 짜서 교대로 고양이 물러가라고 찍찍거리는 상황이다." 진 교수는 우리가 말했던 엑스트라를 쥐에, 그리고 윤석열 총장을 고양이에 비유했다. 다만 민주당 이해찬 대표는 뭔가 낌새를 눈치 챈 것 같다. 일제히 함구령을 내렸다. 윤석열 이름 석 자를 거론하지 말라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이해찬은 노련하다.

 

앞서 말한 칼럼에 한 전직 검찰총장이 인용됐는데, 여기서 말한 엑스트라를 그 분은 끄나풀들이라고 했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윤 총장을 왜 못 자르겠어? 후폭풍이 두려운 거지. 이건 법치와 권력의 싸움이야. 법대로 수사하는 걸 단죄할 명분은 없지. 그러니 끄나풀들이 앞에서 동뜨고 대통령은 뒤로 빠져 있잖아." 침묵하고 있는 문 대통령, 그의 앞에서 충성 경쟁하듯 끄나풀 노릇을 하고 있는 엑스트라들, 그러나 결국 영화가 끝나갈 때쯤이면 엑스트라는 사라지고 OK 목장에는 두 사람만 남게 된다. 한쪽에는 헌법주의자 윤석열이 있고, 다른 쪽에는 권력이란 이름의 정치 보스가 서 있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