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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향기

자유 연습

by 라폴리아 2019. 3. 6.

자유 연습

장터 가는 달구지 위에 송아지 한마리

슬픈 눈을 하고 실려 있네

그 위 높이 제비 한 마리

날래게 창공을 가르며 날고 있네

 

어린 시절 좋아했던 조앤 바에즈의 노래 ‘도나 도나’의 첫 절이다.

선율이 좋아 뜻도 제대로 새기지 않은 채 듣던 이 곡이 목가적인 노래가 아니라는 것은 한참 뒤에야 알았다.

두 번째 절 가사를 알고 보니 과연 1960~70년대에 가장 투쟁적인 반전가수의 노래다웠다.

 

농부가 말했네

'징징거리지 말아

누가 너더러 송아지가 되라던

날개를 가지려무나

제비처럼 당당하고 자유롭게'

 

얼마 전 오랜 친구들과 저녁을 하는데 그중 하나가 물었다.

“자유가 뭔지 아니?”

다소 뜬금없어서 생각하는 중인데 다른 친구가 대답했다.

“글쎄, 나는 무애(無碍)라는 말이 생각나는데?”

무애, 행함에 거리낌이 없음을 나타내는 불교의 개념일 터인데 불자도 아닌 친구가 그렇게 멋진 대답을 금방 하는 것을 감탄하자 처음 질문했던 친구가 벌떡 일어나며 말했다.

“자유는 이렇게 일어나고 싶으면 일어나고 앉고 싶으면 앉는 거야. 그냥, 아무 이유 없이도”

하고 그는 앉았다. 요즈음 읽은 철학 서적에서 나온 설명이라고 했다. 대답을 못 했지만 그 좌중에서 생각난 것이 ‘도나 도나’였다.

 

몽골의 사막을 횡단한 적이 있었다. 온종일 회색빛의 황무지를 달리고 있는데 오아시스가 나타났다. 한눈에 들어올 정도로 작아서 축구장 네댓 개 정도가 될까 말까 했다. 그래도 그 안에 풀밭, 호수, 나무, 벌과 나비, 누가 데려다 놓았는지 양과 다른 가축들도 있었다. 안내자의 설명은 먼 데 있는 설산의 눈 녹은 물이 지하로 흘러와 고여 이 오아시스를 만든다는 것이었다. 넓은 사막 한가운데 있는 그 작은 초록 웅덩이는 비현실적으로 보이게 작았지만 그 안에도 온갖 생물들이 살고 있었다, 자유롭게.

 

비좁은 축사에 살면서 뛰지도, 마음대로 움직이지도 못하면서 살다가 도살장으로 끌려가는, 때로 돌림병 때문에 살처분을 당하기까지 하는 우리나라에 비하면 그곳의 가축들은 천국에 사는 셈이었다. 그런데 이 작은 천국이 설산의 눈이 없어지면서 점점 말라 없어져 가는 중이었다. 머지않아 그곳을 떠나지 못하는 생물들은 그 작은 웅덩이와 함께 운명을 같이해야 할 것이다. 자유롭게 보였지만 실은 그 생명들은 작은 웅덩이에 갇혀 그에 의지하고 사는 삶이었다.

 

나는 슈베르트를 좋아해서 작곡가가 되기로 마음먹었다. 당연히 처음 만든 곡들은 가곡이었다. 지금 그 가곡들을 보면 슈베르트의 자취가 완연하다. 내 고유한 악상으로 만들었다고 여겼지만, 아니었다. 알고 보니 나는 슈베르트라는 호수에서 헤엄치고 있는 물고기였다. 후에 다른 작곡가의 작품도 공부하고 현대음악도 공부했다. 나중에는 국악도 알게 되었다. 내가 헤엄치는 호수가 조금 더 넓어졌으리라. 또 나는 그만큼 자유로워졌으리라. 그러나 그 자유란 것이 실은 나의 음악 감수성을 키운 작은 음악의 오아시스 안에서 누리는 자유다. 나는 안다. 그 오아시스가 얼마나 작고 연약한 것인지.

 

 

나의 음악은 얼마나 나의 것인가? 의심스럽다. 음악뿐인가? 나의 생각은? 나의 믿음은? 그것들이 정말 나로부터 비롯된 것이며 나 스스로 다짐한 것인가? 다른 사람의 것을 내 것으로 여기고 있는 것은 아닌가? 교육받은 대로?

‘도나 도나’의 3절에서 조앤 바에즈는 노래한다.

 

송아지는 쉽게 잡혀 도살되지

그 이유도 알지 못한 채

그렇지 않으려면 자유를 소중히 키워야 하네

제비가 나는 법을 익히듯

 

송아지는 억울하겠지만 그건 사육되는 존재의 운명이다.

몽골의 오아시스에서 ‘자유롭게’ 노닐던 양도 언젠가는 도살된다.

그러지 않으려면 사육을 거부할 수밖에.

일어서고 싶으면 일어서고 앉고 싶으면 앉는 것이 쉽고 자연스러워 보이지만 거저 얻어지지 않는다.

우리를 길들이려는 힘들과 끊임없이 대결하는 연습을 통해서 얻어진다. 그것이 자유이리라.

 

이건용 작곡가·한국예술종합학교 명예교수

[출처: 중앙일보] 3/5일자 [삶의 향기] 자유 연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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