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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래식기타

입문

by 라폴리아 2019. 2. 10.

내가 기타를 처음 접한 것은 1980년 무렵이다. 요즘은 악기 하나 다룰 줄 아는 사람들이 많아졌지만, 당시 젊은 사람들은 대개 통기타에 관심이 많았다. 기타를 치며 포크송을 부르는 게 젊은이들의 로망이었고, 야유회 같이 여럿이 모인 자리에 가면 으레 한 친구가 통기타로 판을 리드하였다.

 

청주에서 자취할 때 근처에 기타 치며 노래 부르기를 좋아하는 친구가 있었다. 가끔 그 친구 반주에 맞춰 노래를 부르기도 하고, 기타줄을 튕겨보며 간단한 코드를 배웠다. 그러다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부터 '사랑해', '꽃반지 끼고', '연가', '등대지기', '모닥불', '젊은 연인들' 등 코드가 쉬운 곡을 기타 치며 노래를 부르기도 하였다. 어렵사리 통기타를 구입했으나 기타에 대한 열의는 그다지 크지 않아 그냥 기타 교본 하나 사서 시간 나는대로 기타를 잡아보는 게 고작이었다. 그러다 보니 실력은 항상 입문 수준을 벗어나지 못했다. 그래도 암보하고 싶던 곡이 '부베의 연인'과 '태양은 가득히'였다. 아무 지식도 없이 그저 그 곡을 외웠다. 친구들이 놀러오면 두 곡을 치며 은근히 으시대기도 하였다. KIA에 입사하기 전까지는 손가락이 그런대로 이 곡들을 기억하고 있었으나, 입대 후 숙소 책꽂이에 꽂아 놨던 교본을 어떤 놈이 슬쩍 가져간 뒤로는 실낫 같던 기타와의 인연이 끊어져 버렸다. 그 후 기타를 아예 잊고 지내다 몇 해 전 아들 녀석이 재즈기타 동아리에 가입하면서 사 준 통기타를 만져보니 '부베의 연인' 처음 부분만 기억날 뿐이었다.

 

지난 3월말까지 방영됐던 TV 주말드라마 '황금빛 내 인생'에 천호진 씨가 기타를 치는 장면이 나왔다. 유명한 프로 레슬러 천규덕씨의 아들로도 유명한 천호진 씨는 어릴 적부터 기타를 배워 솜씨가 수준급이라고 한다. 이 드라마에서 천호진 씨는 위암 말기로 시한부 판정을 받고는 기타를 배우러 기타 학원에 간다. "고등학교 때 교회에서 배우다가 그 후로 혼자 쳤습니다. 근데 딱 1주일만 배울 수 있겠습니까. 제가 어디 멀리 가게 돼서요. 수강료는 한 달 치를 드리겠습니다".

병고에 시달리면서도 틈틈이 클래식 기타에 심취하다가 죽기 직전 가족들 앞에서 처음이자 마지막 콘서트를 마치고 숨을 거둔다. 이런 애절함과 그의 기타 솜씨가 어우러지면서 '로망스'를 연주하는 장면이 내게 매우 감동적으로 다가왔다.

과연 죽음을 앞둔 시점에서 저토록 기타를 연주하고 싶을까. 어떻게 기타가 죽음까지 초월하게 하는 것일까. 아니면 무슨 특별한 사연이나 의미가 있는 것인가. 그렇다면 한 번 배워봐야 할 만한 충분한 가치가 있는 악기가 아닐까.

 

그렇게 크래식 기타를 배우기로 마음 먹고, 제일 먼저 퇴근시간과 연계할 수 있는 기타 학원을 검색하니 정왕동에 있는 학원이 괜찮아 보였다. 3월부터 레슨을 받기로 하고, 무슨 기타가 좋은지 소개를 받아 즉시 클래식 기타를 구입하였다. 아무리 초짜라도 기본 스케일은 연습하고 레슨을 받기 시작하는 게 레슨 선생님에 대한 기본적인 예의가 아닐까 싶어 열흘 정도 열심히 기본 스케일과 코드를 연습하였고, 하루에도 몇 번씩 틈나는대로 최대한 기타와 가까워지려고 노력하였다. 그런데 레슨을 받기 위해 막상 기타학원에 일정을 확인해보니 맞는 시간대가 없었다. 부득이 다시 레슨 학원을 검색하여 한대앞역 근방에 있는  음악학원이 괜찮아 보여 바로 레슨을 받기 시작하였다. 그런데 이곳은 퇴근 후 두어 시간을 기다려 레슨을 받아야 했다. 저녁도 사먹어야 하는 것도 너무 불편하였고, 1주일에 1시간을 선생님한테 1:1로 레슨받는 게 굉장히 부담스러웠다.

 

다시 집 근처에 학원을 알아보고 옮긴 데가 ‘아름학원’이다. 학원 다니기가 아주 편리해졌고, 1주일에 40분씩 2번을 레슨 받는다. 이렇게 레슨을 받기 시작한 지 어느덧 3개월 반이 지난다. 선생님 말에 의하면 배우는 속도가 빠르다고 하는데 본인은 전혀 늘고 있다는 느낌이 안 든다. 귀가하면 틈 나는대로 기타를 만지고, 숙제 또한 열심히 해가는데 항상 그 모양 그 꼴이다. 아직도 '로망스'의 세하 부분은 운지가 잘 안된다.

그래도 조금 바뀐 게 있다면, 암보하는 시간이 좀 단축돼 가는 거 같고, 운지할 때 틱틱거리는 소리가 좀 줄었고, 각 줄의 위치를 손가락이 어느 정도 알게 됐다는 것 정도. 3년을 안쉬고 열심히 연습해야 클래식 기타에 대한 느낌이 조금 온다는 친구의 친구 말도 있고 하니 기타와 친구처럼 지낸다는 건 아직 까마득하게 먼 훗날의 이야기다.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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