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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ㅣ자연ㅣ뉴스

인류 10대 난제, 노화와 죽음

by 라폴리아 2017. 12. 26.
화도 고칠 수 있는 질병, 냉동인간 150명 부활 기다린다
국 애리조나주 알코어생명연장재단의 한 수술실. 사망한 지 10분쯤 된 시신이 수술대에 올라왔다. 이곳에서 진행되는 냉동인간 시술은 의사 사망선고가 내려지고 15분 이내에 시작된다. 먼저 의료진이 얼음을 부어 신체 온도를 영하로 낮춘다. 동시에 피가 굳지 않도록 하는 특수약물을 주입한다. 그런 다음 혈액을 빼내고 16가지 장기 보존액을 주입한다. 마지막으로 동결보존액을 주입하고 서서히 냉동시켜 영하 196도 액화질소 탱크에 보존한다.  
막스 모어 알코어 CEO는 “재단의 임무는 회원들에게 수명을 연장하는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라며 “머잖은 미래에 몸을 재활용하는 시대가 올 것”이라고 말했다. 재단은 의학적으로 이미 숨진 이들을 ‘냉동 시신’이 아닌 환자(patients)로 부른다. 1982년 설립된 이 재단에는 현재 미국은 물론 일본·중국 등지에서 온 냉동인간 150여 명이 새로운 생명을 얻을 미래를 기다리며 잠들어 있다. 이 중에는 2002년 83세로 숨진 미국 프로야구 메이저리그의 ‘타격의 신’ 테드 윌리엄스도 있다. 알코어 생명재단의 냉동인간은 죽음마저 넘어서려는 21세기 인류의 몸부림이다.
 
국, 노화 따른 근육 감소 질병 분류
명 연장과 노화에 도전하는 인간의 꿈이 점차 현실이 되고 있다. 지난해 10월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는 근감소증에 ‘M62.84’란 질병 분류 코드를 부여했다. 사람의 근육량은 20대 무렵 최대치에 이른 뒤 서서히 줄어 70대 이후에는 40% 이상이 감소한다. CDC의 이번 조치는 노화를 바라보는 시선이 ‘나이 들면 당연한 일’에서 ‘질병’으로 바뀌고 있다는 걸 의미한다. 국내 의료계에서도 근감소증에 대한 질병 코드를 부여하는 걸 검토 중이다.  
노화가 독자적인 연구 주제로 자리 잡은 건 2000년대 후반이다. 2009년 노벨 의학상이 세포 속 생체시계 ‘텔로미어’의 역할을 확인한 엘리자베스 블랙번 교수 등 3명에게 돌아가면서 노화 연구는 혁명기를 맞았다. 염색체 끝단을 말하는 텔로미어는 운동화 끈 끝을 감싼 플라스틱처럼 세포 속 염색체 끝부분에 위치하는 유전자 조각이다. 텔로미어는 세포 분열이 일어날수록 짧아지는데 그 길이가 노화점보다 짧아지면 세포는 노화 세포에 접어들고 결국 죽는다.  
생체시계를 되돌리는 회춘은 불가능한 걸까. 블랙번 교수는 국내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텔로머라아제 기능이 활발해져 텔로미어 길이가 줄어들지 않으면 세포 노화가 일어나지 않는다”고 말한다.  
텔로머라아제는 텔로미어가 짧아지는 것을 막는 몸속 효소다. 암세포가 무한 증식할 수 있는 건 텔로머라아제 활성으로 텔로미어가 짧아지지 않기 때문이다.
 
포노화·암세포 연구는 동전의 양면 
로머라아제를 활용해 노화시계를 되돌리는 데 성공한 사례도 있다. 2010년 하버드 의대 로널드 드피뇨 박사 연구팀은 유전자 조작을 통해 나이 든 생쥐를 젊어지게 만들었다. 연구팀은 유전자 조작을 통해 텔로머라아제를 조절할 수 있는 스위치를 실험쥐 세포에 장착했다. 텔로머라아제 효소 활성화 스위치를 작동시킨 지 한 달이 지나자 회색 털이 검은색으로 변했고, 줄어든 뇌의 크기도 정상으로 회복됐다.  
국내에선 노화 연구가 두 갈래로 이뤄지고 있다. 노화 세포와 암세포다. 2008년 노화 연구단을 꾸린 한국생명공학연구원은 근육 노화에 연구를 집중하고 있다. 이 연구소는 지난해 노화에 따른 뇌 기능 저하를 설명하는 연구결과를 내놨다. 근육에서 만들어지는 ‘카셉신 B’ 호르몬이 뇌의 인지기능을 좋게 만드는데, 노화로 인해 근육이 줄면서 이 호르몬 분비가 줄어 인지기능이 저하된다는 것이다.
 
화의 원인 텔로미어
로미어는 세포 유전자의 끝부분을 감싸고 있는 유전자 조각을 말한다. 텔로미어는 세포 분열이 계속될수록 짧아진다. 그 길이가 노화점보다 짧아지면 세포는 분열을 멈추고 노화 세포가 돼 결국 죽는다. 
 
권기선 한국생명공학연구원 노화제어연구단장은 “근육도 몸속 장기처럼 건강 유지에 꼭 필요한 호르몬을 분비한다는 사실이 확인됐다”며 “나이가 들어도 적당한 근육량을 유지해야 하는 이유”라고 설명했다. 최근까지 진행된 연구를 종합하면 노화는 근육감소·암·심혈관질환·치매 등 각종 질병의 원인으로 꼽힌다.  
텔로미어와 알츠하이머의 연관성을 연구하고 있는 고성호 한양대 구리병원 신경과 교수는 “알츠하이머 환자의 텔로미어 길이가 일반인에 비해 짧은 것으로 보고되고 있다”며 “노화 관련 효소 hTERT를 통해 알츠하이머를 치료하는 임상시험을 진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텔로머라아제의 특성을 활용해 암세포를 사멸하게 하는 연구도 진행되고 있다. 정인권 연세대 생명시스템대학 교수는 “암세포 텔로미어와 텔로머라아제가 결합하지 못하게 만들어 암세포가 사멸하게 하는 새로운 항암제를 찾고 있다”며 “세포 노화와 암세포 연구는 동전의 서로 다른 면”이라고 말했다.  

르게이 브린 구글 창업자
2013년 노화 연구 바이오 기업 칼리코(Calico)를 설립, 인간 수명을 500세로 연장하는 게 목표라고 한다. 
 
리 엘리슨 오라클 공동 창업자
1997년 자신의 이름을 딴 의학재단 설립. 3억3500만 달러 투자. “인간의 죽음은 피할 수 있는 것”이라고 주장.
미국 실리콘밸리는 노화를 미래 먹거리 중 하나로 꼽아 투자를 늘리고 있다. 구글의 공동 창업자 세르게이 브린이 2013년 세운 칼리코(Calico)가 대표적이다. 칼리코는 노화 원인을 찾아내 인간 수명을 500살 정도로 연장하는 게 목표다. 유전자 조합을 통해 수명이 10배 늘어난 회충을 만든 신시아 캐넌 박사가 칼리코 소속이다.  
오라클 공동 창업자 래리 엘리슨은 1997년 자신의 이름을 딴 의학재단을 설립하고 노화 방지 연구에 3억3500만 달러(약 3600억원)를 지원했다.  
페이팔 공동 창업자 피터 틸은 센스 연구재단에서 수행하고 있는 수명 연장 연구를 지원하는 중이다. 실리콘 밸리의 노화 연구 바이오 기업은 속속 신설되는 중이다.
 
·일 등선 국가 주도 노화연구소 운영 
지난해 3월 생명과학자 크레이그 벤터는 ‘인간 장수(Human Longevity)’라고 이름 붙인 바이오 기업을 설립했다. 벤터는 “2020년까지 100세 이상 살아간 사람들을 포함해 100만 명의 유전자를 해독해 수명 연장 정보를 찾아내겠다”고 말했다.
 
화 연구는 시간과의 싸움이다. 이준호 서울대 생명과학부 교수는 “노화 원인물질을 찾더라도 이를 임상시험에서 검증하는 데는 최소 10년에서 길게는 30~50년이란 시간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는 인간의 생애 주기가 80년 정도로 길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생애 주기가 짧은 꼬마선충(3주)이나 생쥐(2년)가 노화 연구에 활용된다. 노화 연구가 단기간에 결과물을 내놓을 수 없기에 미국·일본 등 선진국에선 국가 주도로 노화연구소를 설립해 운영하고 있다. 반면, 국내에는 노화만을 다루는 국책 연구소가 없다.

대판 불로초는 어느 수준까지 도달했을까.
미국 국립보건원 임상시험 홈페이지(clinicaltrials.gov)에는 세계적으로 진행되고 있는 시험 종류와 약물이 기록돼 있다. 이 중 노화(aging)를 키워드로 확인할 수 있는 임상시험은 327건이다. 올리브 오일, 오메가-3, 테스토스테론 등에 대한 임상시험이 진행되고 있다.  

이 중에서 가장 주목받고 있는 건 라파마이신이다. 장기 이식 수술에서 거부반응을 차단하는 면역억제제로 개발된 라파마이신은 최근 노화를 늦추는 효과가 있는 것으로 밝혀져 주목받고 있다. 현재 라파마이신과 관련된 노화 임상시험은 10건 이상이다.  
지난해 미국 워싱턴대 매트 케블라인 박사 연구팀은 사람으로 치면 60세에 해당하는 20개월 된 늙은 생쥐를 두 그룹으로 나눠 라파마이신과 위약을 90일 동안 투여했다. 그 결과 라파마이신을 투여한 생쥐가 위약만을 투여한 생쥐보다 최대 60% 더 산 것으로 조사됐다.   
매트 케블라인 박사는 “라파마이신을 투영한 생쥐는 사람으로 치면 140세까지 생명을 연장했다”며 “라파마이신이 생쥐의 장내 세균 구성을 변화시켰고 이로 인해 면역세포 형성을 자극하는 것으로 확인됐다”고 말했다.   
라파마이신은 1970년대 남태평양의 라파 누이 섬 토양에 서식하는 세균에서 분리한 물질로 99년 면역억제제로 미 식품의약처(FAD)의 승인을 받았다. 최근에는 항암 효과도 확인돼 유방암 환자에게도 쓰인다.


진시황 초상화. 진시황은 불로장생을 위해 불로초 탐사대를 여러 차례 보냈지만 끝내 불로초를 찾지 못했다. 영원한 삶을 꿈꾼 진시황은 49세에 생을 마감했다.

  
런 결과에도 라파마이신이 현대판 불로초로 인정받진 못하고 있다. ‘청춘의 샘’으로 불리는 라파마이신이 어떤 구조로 노화 시계를 늦추는지에 대해서 밝혀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여기에 더해 부작용도 꾸준히 보고되고 있다. 당뇨병 위험을 증가시키고 심장 기능을 약화할 수 있다는 연구 결과가 속속 발표되고 있다.  
      
불로초 후보 약물은 더 있다. 2014년 5월, 징 후앙 미국 캘리포니아대 LA캠퍼스 미생물학과 교수는 건강기능 식품에 주로 들어 있는 알파케토글루타르가 꼬마선충 수명을 50%이상 연장한 것을 발견해 과학저널 네이처에 발표했다. 이 물질은 꼬마선충의 에너지 생성을 억제하는 방식으로 수명을 연장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쥐의 혈액에 존재하는 단백질 'GDF11'이 늙은 생쥐의 뇌혈관과 신경세포를 늘리는 것으로 확인되면서 현대판 불로초로 주목받기도 했다.
 이런 노력에도 임상시험을 통과해 약효를 인정받은 현대판 불로초는 단 하나도 없다. 고성호 한양대 구리병원 신경과 교수는 “FDA 승인을 통과한 항노화 약품이 개발됐다면 세계적인 주목받았을 것”이라며 “약효가 검증된 약품은 아직까지 개발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모든 학자들이 인정하는 현대판 불로초는 있다. 바로 규칙적인 운동과 금연, 식습관 조절이다. 미국 케이스웨스턴리저브대 연구팀은 2015년 일란성 쌍둥이의 얼굴과 피부 노화를 분석한 결과 담배를 피운 쌍둥이가 비흡연 쌍둥이보다 57% 더 빨리 늙는 것으로 밝혔다. 이 연구를 이끈 바만 귀우론 박사는 “흡연이 콜라젠 형성을 방해해 콜라젠이 줄고 피부 속 혈액 순환도 저하된다”며 “니코틴이 피부 두께를 줄여 결국 피부 탄력이 떨어지게 된다”고 말했다.

[출처: 중앙일보 17.12.26일자]
 인류 10대 난제에 도전하다]현대판 불로초 찾아라...세계적으로 327건 임상시험 진행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