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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ㅣ자연ㅣ뉴스

인류 10대 난제, 유전체 혁명

by 라폴리아 2017. 12. 5.

지난 10월 한국의 추석 연휴기간, 미국 북서부 오리건의 포틀랜드에 위치한 오리건보건과학대학에서 생명공학 분야의 두 거장이 만났다. 한 사람은 3세대 유전자 가위 기술의 세계적 권위자인 한국 기초과학연구원(IBS)의 김진수(52) 유전체교정연구단장. 또 한 사람은 인간 체세포 핵 이식에 세계 최초로 성공했던 슈크라트 미탈리포프(56) 교수. 두 사람은 지난 8월 세계적 학술지 '네이처'에 유전자 교정 기술을 이용해 인간배아 상태에서 심장 유전질환을 고치는 데 성공한 사실을 알린 논문의 공동저자다. 교정된 인간배아를 그대로 산모의 자궁에 착상시키기만 하면 건강한 아기가 태어날 수 있는 상태였다. 두 석학은 다시 만난 자리에서 심장질환 다음 단계의 인간배아 교정 실험에 대해 의논했다. 


미탈리포프 교수는 중앙일보 취재진에게 “현재는 연구단계의 인간배아 교정이지만, 관련 규제가 풀린다면 10~15년 뒤에는 교정된 인간배아가 자라서 출산까지 이어질 수 있을 것”이라며 “이게 바로 내 연구의 최종 목적지”라고 말했다.
 
세계 유전체 공학 기술이 도약점을 넘어 특이점을 향해 치솟고 있다. 20년 전인 1997년 개봉한 미국의 과학소설(SF) 영화 ‘가타가’가 기술적으로는 더 이상 ‘공상’이 아닌 현실로 다가오고 있다. 가타카는 유전체 분석과 교정이 일반화된 미래의 얘기를 그린 영화다. 그 미래는 유전적으로 건강한 사람들이 주류가 돼 살아가는 세상이다. 그 속에서 태어나자마자 ‘심장 질환 99%, 31살에 사망’이라는 유전체 결함 및 질병 예측 분석 결과를 받아야 했던 주인공이 운명을 개척하며 살아가는 이야기다.
 

영화 가타카의 세상을 향해 달려가는 대표적 국가가 미국이다. 미국은 정부 차원에서 유전체 산업 지원 의지를 보이고 있다. 2015년 오바마 미 대통령은 백악관 연두교서를 통해 ‘정밀의학 이니셔티브(precision medicine initiative)’의 시작을 알렸다. 개인 유전자ㆍ환경 및 생활 양식 등의 개인차가 질병 예방 및 치료에 중요해지고 있다고 판담함에 따라 개인 맞춤형 의학 확대를 지원하겠다는 뜻이다. 이를 위해 지난해 2억2000만 달러(약 2370억원)을 이미 투자했으며, 향후 5년간 100만 명 이상의 유전자 정보를 분석해 맞춤 의학을 실현한다는 계획을 세웠다.  
 
유전체 기술은 크게 유전체 분석과 교정(editing)으로 구분된다. 유전체 기술의 궁극이라 할 수 있는 인간배아 단계의 유전체 교정 기술은 미탈리포프 교수의 사례에서 보듯 아직 연구실의 문턱을 넘어서지 못하고 있다. 연구개발이 초기단계인 것도 이유이지만, 관련 규제가 엄격한 탓이 더 크다. 아직 세계 어느 국가도 연구가 아닌 치료 목적의 인간배아 유전체 교정을 허용하지 않고 있다. 유전체 교정 기술이 몰고올 엄청난 파급효과에 인류가 아직 준비돼 있지 않기 때문이다.

 
유발 하라리는 그의 저서 ‘사피엔스’에서 이 같은 기술이 발전하면 현생 인류인 호모 사피엔스보다 더 뛰어난 신생인류가 세상을 지배하면서 사피엔스는 멸절할 것이라고 예언했다. 이런 우려 때문에 지난달 초 세계 30개국 학자 200여 명이 국제학술지 네이처 바이오테크놀로지에 ‘인간세포 생명공학 활용 윤리원칙’ 이라는 합의문까지 발표했다. 합의문은 생명공학 연구의 원론적인 생명윤리를 담은 것이지만, 국제조약을 통해 국가간 차별없는 협력과 규제에 나서야 한다고 적시했다.
 
그럼에도 인간 유전체 치료가 아닌 분석은 연구개발을 넘어 이미 산업의 단계로 접어들었다. 2006년 2000만 달러(약 217억원)에 달했던 개인 유전체 분석 비용은 2010년 1만 달러를 지나 이제 100 달러대로 떨어졌다.  
 
지난 10월 중앙일보 취재진이 찾은 미 샌프란시스코 남부 일대에는 곳곳에 유전체 분석 서비스를 하는 기업들이 자리잡고 있었다. 세계 시장의 70%를 차지하고 있는 유전체 분석장비 생산업체 일루미나의 조립공장도 그곳에 있다. 일루미나는 지난해 자회사 그레일을 설립, 혈액 속 유전체 분석으로 암을 조기에 진단하는 정밀의학에 도전하고 있다. 유전자 분석 서비스 기업 23앤미의 유전자 검사 누적 고객 수는 2015년 6월 100만 명, 2016년 1월 120만 명을 돌파했다.
 
설립 10년을 맞은 카운슬은 유전체 분석을 통해 성인 대상 유전질환 진단과 태아 검사 서비스 등을 하고 해오고 있다. 카운슬은 특히 유전으로 인한 유방암 발병 가능성 등 각종 암에 대한 사전 진단에 특화돼 있다. 검사비용이 350달러인 이 서비스는 이미 한해 약 20만 명이 이용하고 있으며, 덕분에 지난해 매출이 500억원을 넘어섰다.  
 

카운슬에서 3㎞도 떨어져 있지 않은 곳에 위치한 또다른 유전체 분석 기업 칼라지노믹스를 방문했다. 2011년 췌장암으로 사망한 애플 창업자 스티브 잡스의 아내 로라 등 미국 정보기술(IT) 기업 관련 유명인들이 주요 투자자다. 구글 출신들이 2013년 창업한 이 회사는 플라스틱으로 된 조그만 유전체 진단 키트를 내놨다. 고객이 집에서 249달러짜리 키트에 침을 뱉어 우편으로 칼라지노믹스에 보내면 한 달 안에 암ㆍ혈관질환에 관련한 유전요인이 얼마나 있는지에 대한 보고서를 보내준다.  
크리스틴 문 이사는 “배우 안젤리나 졸리도 이런 검사의 결과를 받고 결과가 나빠 예방 차원에서 유방조직 절제 수술을 받은 것”이라며 “건강검진이 발병 초기를 조기진단하는 것이라면 유전체 검사는 발병 전에 가능성을 차단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향후 당뇨와 정신병 등으로 검사 분야를 넓혀 나갈 것”이라며“미국에서 만 18살 성인이 되면 누구나 유전자 검사를 받을 수 있도록 제도화하는 게 칼라지노믹스의 비전”이라고 말했다.  
 
이 지역에는 한국의 유전체 분석 권위자 중 한 사람인 서울대 김주한 교수가 설립한 유전체 분석기업 사이퍼롬도  유전자정보 1억 건과 최대 5000종의 약물 연관성을 빅데이터 분석을 통해 밝혀낸 뒤 개인에게 약물적합성을 알려주는 ‘약물 적합성 알림 서비스’를 준비하고 있다. 
김 교수는“미국에서만 약물 부작용으로 사망하는 경우가 매년 10만 명에 달한다”며 “유전체 분석을 통한 개인맞춤형 정밀의료를 하게 되면 이 같은 위험을 크게 낮출 수 있다”고 말했다.
 
유전체 분석과 치료를 신산업으로 육성하는 곳은 미국 뿐이 아니다. 영국도 2012년 이미 ‘10만 유전체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영국 보건부가 2012년 발표한 이 프로젝트는 유전체 분석을 통한 암ㆍ감염질환 및 희귀질환자 치료를 목적으로 하고 있다. 이를 위해 영국 보건의료서비스(NHS)에 등록된 암 및 희귀질환 환자 중 7만5000여 명이 제공한 10만 개의 유전체를 분석 중이다. 일본도 2015년부터 ‘질병 극복을 위한 지놈의료 실현화 프로젝트’를 시작하고, 정밀의학을 위해 매년 약 1000억원의 예산을 투입 중이다.
 
유전체 기술의 난제는 없을까. 첫째가 유전체 기술을 어디까지 허용할 것인지에 대한 인류의 합의다. 이것을 넘어선다면 관련 기술진보는 급속도로 이뤄질 것이라는게 전문가들의 견해다.
 
김선영 한국생명공학연구원 유전자교정연구센터 책임연구원은 “생명윤리의 문제도 넘어서야 하고, 유전체 분석과 성인 유전체 교정 등 연구개발의 여지가 많이 남아있고 지만 지금의 속도라면 20년안에 유전체 기술 연구가 완성될 것으로 전망된다”고 말했다.  



 

한국의 유전체 연구와 기술은 세계 정상급 수준이다. 유전자가위 분야의 세계적 권위자이면서 툴젠의 최대주주 김진수 IBS 단장과 국내 대표적 유전체분석기업 마크로젠의 창업주 서정선 서울대 의대 교수, 지난해 말 한국인 표준 유전체 지도를 완성한 박종화(생명과학부 교수) 울산과학기술원(UNIST) 게놈산업기술센터장 등이 대표적 인물이다. 
  

정부도 박근혜 정부 당시인 2014년부터 향후 8년간 ‘포스트게놈 신사업 육성을 위한 다부처 유전체 사업’에 총 5788억원을 투입하는 계획을 세우고 추진 중이다. 하지만 최근 들어 이 프로젝트의 연구 수행에 대한 도덕적 해이 문제가 거론되는 등 국내 생명공학계의 평가는 부정적이다. 
  
게다가 황우석 사태 이후 강화된 생명윤리법 등 각종 법과 규제가 넝쿨처럼 유전체 연구와 산업을 휘감고 있어 어려움을 겪고 있다. 김진수 교수가 슈크라트 미탈리포프 미국 오리건보건과학대 교수와 인간배아 교정에 대한 공동연구를 한 것이 대표적 사례다. 김 교수가 한국 내에서 인간배아 유전체 교정 연구를 할 경우 현행 생명윤리법에 따라 형사처벌된다. 세계가 유전체 연구를 통해 정밀의학을 신산업으로 이끌어가고 있는데, 한국만 지나친 규제로 관련 연구자들의 손발을 묶어놓고 있는 셈이다. 
  
하지만 그간 국내 유전체 연구와 산업의 발전을 막아온 생명윤리법은 조만간 개정될 가능성이 있다. 국무총리 산하 국무조정실은 지난달 30일 ‘제2차 규제혁파를 위한 현장 대화’를 통해 유전자가위, 배아줄기 세포 치료제 연구 허용범위를 선진국 수준으로 확대한다는 방침을 내놨다. 
  
생명윤리법 개정을 주도해온 신용현 국민의당 의원은 “법의 모호함과 엄격한 제한 조건으로 연구현장에서는 어떤 연구가 합법적인 연구인지 불법적인 연구인지 판단이 안 돼 연구자들이 연구를 꺼려하거나 포기하고 있는 실정”이라고 지적하면서 “법 개정을 통해 국제 수준과 비교해도 과도한 유전자치료 연구 규제를 개선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생명윤리법은 그간 연구 목적 이외의 유전자 검사는 특정 항목에 한해 반드시 의료기관을 통해서만 이뤄지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 때문에 마크로젠 등 국내 주요 유전체 분석 기업들은 대부분 연구자들을 대상으로 한 시장이 주를 이뤘다. 하지만 지난해 6월 말 보건복지부 고시를 통해 의료기관을 거치지 않고 분석 가능한 일반인 대상 유전자 검사가 탈모·피부·혈압 등 12개 항목에 한해 허용됐다. 유전자 검사를 통해 타고난 유전 체질을 확인한 후 그에 맞는 건강관리를 유도한다는 게 목적이었다. 이숙진 마크로젠 개인유전체사업부문장은 “허용된 항목에 대한 소비자의 관심이 낮고 항목별로 대상 유전자가 지정돼 있어 새로운 연구 결과를 반영할 수도 없다”고 말했다. 
  
반면 미국·일본 등 외국은 이런 규제에서 자유롭다. 미국은 안 되는 것 외에는 모두 가능한 네거티브 규제 시스템이며, 일본은 일반인 대상 유전자 검사 시장에 규제가 거의 없다. 이 때문에 서정선 교수의 마크로젠과 DNA링크·테라젠 등은 한국 시장에 거꾸로 들어오는 외국 기업과 경쟁에서 역차별을 받고 있다. 제노플랜처럼 한국 기업인데도 규제에서 자유로운 일본에 본사를 세우는 기업이 나오는 이유다. 
  
서울대 강남검진센터의 경우도 미국 샌프란시스코에 본사를 둔 한국 기업 사이퍼롬을 통해 내년부터 유전체 분석 서비스를 시작할 예정이다. 


미국 오리건보건과학대의 슈크라트 미탈리포프 교수는 김진수 IBS 단장과 더불어 세계 유전체 공학 분야의 최첨단에 서 있는 인물이다. 인간배아 교정으로 대표되는 두 사람의 연구성과는 현대 생명공학의 '게임 체인저(game-changer)'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지난 10월 미국 오리건주 포틀랜드의 오리건보건과학대 13층 연구동에서 미탈리포프 교수를 인터뷰했다. 그는 2013년 5월 세계 최초로 인간 체세포 핵 이식에 성공했다. 원래 2005년 황우석 서울대 교수가 성공했다고 주장했다가, 조작이 드러나 국제 과학계에서 부정된 연구분야다. 미탈리포프 교수는 카자흐스탄 출신이다. 러시아 모스크바에서 줄기세포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소련 붕괴 후인 1995년 미국으로 건너가 시민권자가 됐다. 그는 6명의 교수가 공동으로 쓰는 대형 실험실은 물론, 카드키를 사용해야 열리는 인간배아 교정 연구실, 줄기세포 실험실, 쥐 배아세포 복제 실험실을 별도로 운영하고 있었다. 다음은 일문일답.     
  
-당신 연구의 최종 목표는 무엇인가

“나의 연구의 최종 목적은 법이 허용한다면 교정된 인간배아를 정상적인 아이로 키워내는 것이다. 쉽게 얘기하자면, 연구에 그치지 않고 인간 유전 질병의 치료까지 하겠다는 거다.”   
  
-미국도 생명 윤리에 대한 규제가 있을 텐데. 
“미국은 한국과 달리 연구목적의 인간배아 교정은 허락하지만 한국과 마찬가지로 치료목적의 교정은 허락하지 않고 있다. 비윤리적이라는 얘기다. 하지만 생각해봐라. 실험이나 인공수정 후 남는 인간 배아를 버리는 게 윤리적인가, 아니면 잘못된 유전자를 교정해서 인간으로 성장하게 하는 게 윤리적인가.”   
  
-유전체 기술이 언제 어느 정도까지 발전할까 
“현재는 연구 단계의 인간배아 교정 수준이지만, 10~15년 뒤에는 교정된 인간 배아로 출산까지 이어질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건 시작이다. 사회적 수용성이 중요하다. 실제로 이 같은 기술이 일반화되려면 적어도 2050년은 되어야 할 것으로 판단한다.” 
  
-앞으로도 김진수 단장과 공동연구를 하나. 
“그렇다. 미국 내에도 유전자 가위를 전공한 학자들이 적지 있지만, 김 단장의 유전자 가위 기술이 가장 정확하며, 무엇보다도 그 정확성을 제대로 측정할 수 있다는 측면에서 김 교수의 기술을 신뢰할 수밖에 없다.”   
  
-연구에 어려운 점이 있다면.   


“가장 큰 장애물이 윤리 문제와 이 때문에 생기는 규제다. 미국에서 인간배아 분야는 연구할 수는 있지만, 연방 정부의 연구개발(R&D) 예산을 지원받을 수는 없다. 이 때문에 주 정부나 민간에서 자금을 끌어와야 한다. 하지만, 생명공학 분야의 새로운 연구는 초기에 항상 윤리 논란에 휩싸였지만, 이후 그 실용성과 질병 극복의 중요성을 인정받아 허용된 역사를 가지고 있다. 지금은 너무도 일반화돼 아무도 시비를 걸지 않는 시험관 아기 시술이 대표적 사례다.” 
  
-다음 연구주제는 뭔가. 
“임상시험심사위원회(IRB)를 통과해야겠지만 배아(胚芽) 단계에서 유방암을 일으키는 브라카 유전자 변이를 교정하는 연구를 하고 싶다. 배아단계에서 이런 유전 질병의 원인을 제거해 다음 세대로 이어지지 않도록 하는 연구를 하겠다는 뜻이다. (브라카 유전자는 미국 여배우 앤젤리나 졸리가 유전자 검사 후 돌연변이가 발견돼 예방 차원에서 유방조직을 제거하는 계기가 된 그 유전자다.) 


[출처: 중앙일보] 세계 유전체 기술, 도약점 넘어 특이점 향해 치솟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