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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진, 가을과 겨울이 맞닿은 강진만

by 라폴리아 2016. 11. 25.

찬바람 타고 온 큰고니

가을과 겨울이 겹쳐지는 계절, 가장 극적인 풍경은 해안에 있다. 

깊은 숲도 아니고 은행잎 깔린 길섶도 아니라 갯벌에서 가을은 가고 겨울이 온다.

이를테면 가을부터 누런 갈대밭 습지에 겨울 철새가 떼 지어 날아드는 장면에서 우리는 계절의 순환을 목격한다.

 

그 극적이고 아름다운 장면이 전남 강진만에 있다.

강진만 물가에는 유구한 세월이 내려앉아 있다.

강진의 옛 이름 탐진(耽津)에도 그 흔적이 있다.

탐진은 탐라(옛 제주도)로 가는 나루라는 뜻이다.

조선시대 탐진나루는 제주와 뭍은 잇는 창구였다.

제주도에서 싣고 온 말이 나루에 내려졌고, 귀양 가는 선비가 나루에서 제주도로 가는 돛단배에 올라탔다.

강진만에 포구가 발달한 건 이유가 있었다.

강진만은 내륙 안쪽으로 바다가 깊숙이 들어와 파도가 순했다.

대신 폭이 넓고 깊이도 있어 고깃배는 물론이고 큰 배도 드나들었다.

물이 빠지면 갯것 뛰노는 갯벌이 됐다.

 그 순한 바다와 축축한 땅에서 강진 사람은 살을 찌웠다

 

다산 정약용(17621836)은 강진에서 18년 유배기를 보냈다.

1801년부터 1818년까지다.

만덕산(412m) 기슭 초당에서 다산은 500여 권의 저서를 남겼다.

책만 쓴 것이 아니었다. 강진의 산천도 노래했다.

 

 

남당마을 입구에 밀려오는 저녁 밀물

갯벌과 푸른 물 사이사이 포구로세

갯마을 한평생을 게구멍과 이웃이요

어부의 풍속도는 고기잡이 그것이지

지금 강진만에는 겨울기운이 드리워 있다.

 

갈대밭 너머에선 겨울철새 큰고니와 청둥오리가 떼로 울부짖고, 갯벌에선 살 찌운 갯굴이 썰물마다 등을 내민다.

늦가을 배웅이자 겨울 마중이다.

강진만은 포근했다.

때때로 바람이 찼지만 날카롭지는 않았다.

 
 
 

[출처: 중앙일보] [커버스토리] 찬바람 타고 큰고니가 왔어요
 
 

겨울맞이 강진 여행

 

겨울을 앞둔 강진만은 풍요롭고 분주했다.

갈대밭이 마지막 황금빛을 토해내는 사이 갯벌에는 겨울 손님 큰고니가 내려 앉았다.

강진만 가운데 떠 있는 가우도에서 겨울 바람을 맞는 동안 아낙의 거친 손에서 바다를 먹고 자란 첫 굴이 꺼내지고 있었다.

백련사에서는 성미 급한 동백이 벌써 시뻘건 꽃을 피웠다.

남도 끝자락 강진 땅으로 겨울 마중을 다녀왔다.

 

 

 

 

가을과 겨울이 맞닿은 강진만

남도 끄트머리에 사람 인() 자 모양의 땅이 있다. 전남 강진이다. 갈라진 두 다리 사이에 바다를 둔 땅. 강진 땅 깊숙이 강진만이 파고든다. 예부터 강진 사람 대부분은 이 바다에 기대어 살았다. 바다에 고깃배를 띄웠고 갯벌에서 조개를 캤다. 그 강진만에서도 북쪽 깊은 자리, 탐진강과 강진만이 만나는 물목에 너른 갈대밭이 있다. 갯벌에 뿌리 내린 갈대가 약 66(20만 평)의 군락을 이루고 있다. 명성과 규모는 순천만 습지에 뒤질지 몰라도 정취는 충분히 비견할 만하다. 강진만 갈대밭은 조정래의 소설 한강에도 멋스럽게 묘사돼 있다. 포구의 양쪽 갯벌을 따라 무성하게 펼쳐진 갈대밭이 3월의 바람결에 느리고 부드럽게 물결 짓고 있었다. 갯벌과 바닷물과 갈대가 어우러진 기나긴 포구 풍광은 언제나 환상적인 아름다움을 자아내고 있었다. 강진 사람들은 어디에서나 그 포구를 바라볼 수 있었고, 강진만의 색다른 정취는 그 포구에서 우러나오고 있었다.’

소설 속 포구가 지금의 강진읍 남포마을(옛 남당포)이다. 지금 포구는 사라지고 없다. 일제 강점기부터 이어진 간척사업의 영향이다. 하나 갈대만은 쓰러지지 않고 여전히 갯벌을 무성히 채우고 있다. 사실 강진만은 3월의 바람결에 갈대밭이 부드럽게 물결 지을 때보다, 누렇게 익은 갈대에 겨울철새가 내려앉는 이맘때가 훨씬 특별하다. 천연기념물 201호 큰고니의 집단 서식지가 강진만이다. 갈대꽃이 솜털 같은 씨앗 뭉치를 흩날리고 겨울철새가 갯벌에서 군무를 펼치는 장관을 함께 볼 수 있는 유일한 시기가 11월에서 12월 초까지다. 가을에서 겨울로 넘어가는 순간의 분주함이 강진만 갯벌을 가득 물들인다.

 
 
 

 

다산초당은 아직 가을에 머물러 있었다. 채 잎을 떨구지 않은 단풍나무가 초당 옆에서 멋을 부리고 있었다. 다산초당 한편의 천일각에 올랐다. 저 멀리 강진만이 은빛으로 물결치고 있었다. 해 질 녘 다시 갈대밭을 찾았다. 황금빛 갈대 위로 큰고니 떼와 청둥오리 떼가 숨가쁘게 움직였다. 강진만의 주인이 바뀌는 화려한 교대식이었다.

 

새벽녘부터 갈대밭을 걸었다. 갈대밭은 탐진강 하구의 목리마을 가장자리를 거쳐 남포마을 앞 갯벌까지 줄기차게 이어졌다. 얼마 전만 해도 강진만 갈대밭은 제방길에서 내려다보는 게 전부였다. 그러나 지난달 약 2.8길이의 데크로드가 놓여 걷는 재미가 커졌다. 온전히 갈대밭을 지나는 구간도 있고, 갯벌 위를 통과하는 구간도 있다. 데크로드에 드니 어른 키보다 높은 갈대가 사방을 포위했다. 갯벌에서는 아직 겨울잠에 들지 못한 망둥이와 농게가 부산히 움직였다. 마침 큰고니와 청둥오리가 떼지어 앉아 있었다. 물이 찬 펄에서 유영하는 놈, 날갯짓으로 몸을 푸는 놈, 갯벌에 머리를 박고 먹이를 찾는 놈 등등 다들 아침 준비로 바빴다.

 

겨울이 문턱까지 왔다는 증거는 만덕산(412m) 백련사 동백나무 숲에도 있었다. 겨울 즈음 꽃을 피워 봄에 만개하는 동백이 벌써 성미 급하게 피어있었다. 동백림 너머 오솔길에는 채 마르지 않은 단풍 낙엽이 수북했다. 1가량의 오솔길을 올라 다산 정약용(17621836)의 혼이 서린 다산초당에 들렀다. 다산은 1801년 신유박해로 강진에 유배돼 꼬박 18년을 살았다. 주막집에도 얹혀 살고, 보은산(273m) 고성사의 보은산방(寶恩山房)에서도 쪽방살이를 했지만, 강진에서 가장 오래 머문 장소가 초당이었다. 다산은 다산초당에 틀어박혀 목민심서』 『경세유표500여 저작을 완성했다.

 

 

 

 

강진만 해안 나들이


찻길로만 보면 강진에서는 지름길이랄 게 딱히 없다. 기다란 강진만을 가로지를 길이 없으니, 강진만 서쪽 지역에서든 동쪽 지역에서든 반대편으로 이동할 때는 국도를 따라 빙 돌아가는 수밖에 없다. 다행이 강진 읍내와 동남쪽 끝자락의 마량항을 잇는 23번 국도가 빼어난 전망을 자랑한다. 오른쪽 차창 밖으로 펼쳐지는 바다 풍경이 지루함을 덜어준다.

 

찻길에는 없지만, 걷는 길에는 질러가는 방법이 있다. 강진만 한가운데 떠 있는 섬 가우도에 육지로 통하는 구름다리가 동서로 뻗어 있다. 가우도를 가운데 두고 양쪽으로 다리가 놓여 있는데, 오른쪽 대구면 저두리를 잇는 다리가 438m 길이고 왼쪽 도암면 망호마을을 잇는 다리가 716m. 두 다리를 아울러 가우도출렁다리라 부른다.

 

가우도는 강진만의 8개 섬 가운데 유일한 유인도지만 예부터 사람의 왕래는 많지 않았다. 뭍사람은 거들떠보지도 않았고, 섬사람은 뭍에 기대지 않고 자급자족하며 살았다. 하지만 2011년 다리가 놓이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꼭꼭 숨겨 두었던 섬 풍경은 금세 입소문을 타고 전국에 알려졌다. 지난해 가우도에는 관광객 40만 명이 찾았단다. 가우도 주민은 15가구에 40명이 채 되지 않는다.

 
 

 

 

 

가우도에 들었다. 저두리를 통해 바다 위를 두발로 걸어 섬에 다다랐다. 이름과 달리 다리는 출렁이지 않았다. 반갑게도 섬 안에 또 다른 길이 있었다. ‘함께해() 이란 이름의 해안 산책길이 섬을 둥글게 두르고 있었다. 2.5거리여서 부담은 없었다. 바다에 시선을 맞추며 걷고 또 걸었다. 갯바위 위로 놓인 데크로드를 지나며 제법 찬바람을 맞았다. 이내 포근한 숲길이 나왔다. 흙길을 따라 후박나무니, 소나무니 푸릇푸릇한 상록수림이 이어졌다.

 

 

가우도는 작았다. 면적이 32(10만 평) 규모로 옹색했다. 그래도 즐길 거리는 쏠쏠한 편이었다. 싱싱한 갯것을 낚을 수 있는 해상낚시공원이 조성돼 있고, 마을 주민이 운영하는 마을식당도 있다. 마을 공동창고를 리모델링해 만든 마을식당엔 생선·낙지·굴 요리 외에 커피와 아이스크림 메뉴도 있었다.

가우도에서 뭍으로 돌아갈 땐 출렁다리보다 빠른 길을 선택했다. 가우도 정상 청자타워에서 짚트랙(공중 하강 시설)을 타면 1거리의 저두 선착장까지 1분 만에 도착한다. 줄에 매달려 날아가는 동안 발 아래로 강진만과 갈대밭 그리고 갯벌이 차례로 지나갔다. 구름다리를 건너 섬에 들어와 하늘을 날아 섬을 나가는 독특한 섬 여행이었다.

 

 

가우도에서 나와 미량항 인근에서 갯굴로 유명한 남호마을을 찾았다. 남호마을은 강진만 바다와 맞붙은 땅인데도 남쪽 호수란 이름을 고집한다. 바다를 향해 불쑥 튀어나온 땅이 무인섬 외호도와 내호도를 감싸고 있어 바다가 호수처럼 평온하다. 겨울에도 강진만에는 매생이·개불·낙지 등 다양한 먹거리가 올라온다. 그 선두가 이달부터 갯벌을 까맣게 뒤덮는 갯굴이다. 썰물이 되자 굴 캐는 할머니들이 여기저기서 몰려나왔다. 열다섯 살부터 굴을 채취했다는 장경애(83) 할머니의 망에도 금세 굴이 한가득 담겼다. 할머니의 꼬챙이질 몇 번에 딱딱한 굴 껍질이 벗겨지고 뽀얀 굴이 고개를 내밀었다.

, 굴 맛 시원하네이. 겨울이 왔어.”

 여행정보

서울시청에서 전남 강진군청까지는 자동차로 약 4시간 30분 걸린다. 큰고니와 청둥오리는 보통 2월까지 강진만에 머문다. 남포축구장 앞 데크로드와 덕남리 철새 관찰지점에서 탐조가 수월하다. 가우도 짚트랙은 겨울에도 탈 수 있다. 오전 9~오후 6. 25000.

강진 여행에서 먹는 재미를 빼놓을 수 없다. 강진읍에 예향’ ‘다강등 이름난 한식당이 몰려 있는데, 역사나 명성은 1981년 문을 연 해태식당(061-434-2486)’이 우선이다. 유홍준이 나의 문화유산답사기에서 조선 백반의 진수를 보여주는 3대 한정식 집이라고 소개한 곳이다. 반찬은 계절마다 다르다. 요즘은 생굴·산낙지·홍어삼합·불고기·육회·토하젓·갈치속젓 등 28개 반찬이 올라온다. 26만원.

강진읍시장 뒤편 강진만 갯벌탕(061-434-8288)’도 추천한다. 54년간 강진만에서 짱뚱어를 낚은 이순님(67) 사장이 맛깔스러운 짱뚱어탕(7000)을 내놓는다. 짱뚱어에 낙지·전복을 곁들여 먹는 갯벌삼합(6만원)도 있다. 강진 읍내에 다산이 4년간 기거한 사의재(四宜齋)’가 복원돼 있다. 사의재 한옥체험관도 있다. 14만원부터. 강진군청 문화관광과(061-430-3312).

 

[출처: 중앙일보] [커버스토리] 갈대숲을 거닐다, 철새들과 노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