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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ㅣ자연ㅣ뉴스

브텍시트|안팎으로 위기 자초한 영국의 경솔한 선택

by 라폴리아 2016. 7. 5.
경솔한 선택의 부담은 영국 몫”…“안팎으로 위기 자초한 영국”

지난달 24일 국민투에서서 유럽연합(EU) 탈퇴가 결정된 뒤 캐머런 영국 총리가 사임 의사를 밝혔다. [런던 AP=뉴시스]


모두가 설마 하던 일, 영국이 결국 유럽연합(EU) 탈퇴의 길을 선택했다. 영국이 EU의 전신인 유럽경제공동체(EEC)에 가입(1973년)한 지 43년 만의 일이다. 영국은 독일, 프랑스와 함께 EU의 삼각축을 이루는 국가이며, 영국과 EU의 경제 규모를 합하면 전 세계의 25%를 차지한다. 또한 영국의 경제 규모는 세계 5위, EU 내 2위를 차지한다. EU에 내는 실질적 분담금도 둘째로 많고, 무엇보다 유럽의 금융 중심지다. 경제적·정치적 위상이 큰 국가이니만큼 영국의 탈퇴가 불러올 파장이 클 수밖에 없다. 긴밀하게 연동돼 움직이는 세계 질서 안에서 일명 ‘브렉시트’가 유럽과 세계 전체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촉각을 곤두세우게 된다.

지난달 23일 국민투표 결과 브렉시트가 통과되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가장 빠르게 반응한 곳은 역시 금융시장이다. 불안요소가 된 영국의 파운드화와 유로화는 급락하고 상대적으로 안전성에 대한 기대치가 높은 금값, 미국 달러화 및 일본 엔화 가치는 급상승했다. 그 바람에 세계 증시에서 3000조원, 우리 시장에서 47조원이 하루 만에 사라졌다. 한겨레와 중앙의 사설도 향후 브렉시트의 후폭풍을 분석하는 데 관심을 쏟았다.

우선 한겨레는 영국과 유럽이 겪을 위기 상황에 집중했다. 영국의 이번 결정은 자국의 경제적 고립과 내부 연합국의 분리독립을 자극할 것이라는 점, 유럽 극우파의 자국우선주의 움직임을 확산시킬 것이라는 점, 그리고 세계 금융시장의 혼란이 실물경제에도 영향을 줄 것이라는 점을 지적했다. 국제적 혼란뿐 아니라 스스로를 위기에 빠트린 영국의 선택에 대해 편협한 안목으로 자충수를 두어 세계에 걱정거리를 안겼다고 강도 높게 비판했다.

중앙도 경솔한 선택에 대해 영국의 부담은 영국의 몫이라고 냉담한 평가를 던졌다. 나아가 이 사건을 세계 질서의 패러다임이 바뀌는 신호탄으로 해석하면서 영국의 ‘신고립주의’의 등장을 ‘공포’스럽게 보았다. EU 탈퇴가 타국으로 확산될 조짐이 있고, 무엇보다도 미국 공화당의 트럼프가 미국 우선주의 색채를 띤 대통령 후보라는 점에서 큰 우려를 보였다. 국제 사회에서 리더 그룹에 속하는 영국의 영향력 때문에 폐쇄적인 자국 중심주의 시대를 여는 포문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중앙은 시대의 패러다임이 자유주의에서 고립주의로 변화하고 있다는 점에 초점을 두었고 한겨레는 현실에 미칠 위기의 실체를 분야별로 전망하는 데 초점을 두었다.

영국에서 EU 탈퇴를 지지한 사람들은 지역별로는 잉글랜드와 웨일스에서, 연령으로는 고연령층에서, 학력으로는 저학력층에서, 소득 수준으로는 저소득층에서 더 많았다. 주로 사회적 약자층이 많은 지역에서 브렉시트를 원한 셈인데, 언론에서는 빈부 격차의 심화와 정부의 긴축재정에서 그 원인을 찾고 있다. 우선 실업률과 주거비용, 물가 상승에 따라 살림살이는 빡빡해져 갔지만 동유럽 출신 이민자들과 이슬람 난민들의 유입으로 일자리도 줄고 임금도 하락했다. 영국으로 이주한 외국인은 약 900만 명으로 전체 인구의 13%를 차지할 정도로 늘어났으며, 이들이 지난 10년간 신규 일자리 중 대부분을 차지함으로써 영국민들은 고용시장에서 이주민들을 경쟁자로 인식하게 되었다. 생활고가 가중되자 영국 사회의식 조사(2015년)에서 응답자의 77%가 계층 격차가 심하다고 답했으며, 73%는 계층 이동도 어려워졌다고 생각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이런 와중에도 재정적자를 국내총생산(GDP)의 3% 이하로 유지해야 한다는 EU의 규범에 따라 회원국인 영국 정부는 긴축재정을 유지해야 했다. 지속적인 이주민 유입으로 복지 지출이 증가하고 영국민들이 받는 실질 복지 혜택은 과거보다 축소되었다. 또한 EU에는 매년 30조원(전체 액수의 13%)가량의 분담금을 납부해왔지만 대부분 저개발 회원국을 위해 사용돼 영국이 받는 혜택은 기대에 크게 미치지 못한 것도 한몫했다. 영국민들이 EU의 규범을 간섭과 억제로 받아들이게 됨에 따라 반EU 정서가 자리 잡게 된 것이다. 종합해보면 계층 양극화에 따른 기득권층에 대한 박탈감, 노동시장의 경쟁자인 이주민에 대한 거부감, EU로 구체화된 세계화에 대한 분노 등이 브렉시트의 원인이 되었다. 이번 영국이 선택한 자국 우선주의와 고립주의는 자유시장주의에 입각한 세계화가 불러온 위기의 시작이다. 안타깝게도 영국 내의 모순은 경제적으로 안정된 대부분의 나라에서도 겪는 고민들이다. 빈곤의 확대를 해소하지 못한다면 거대한 변화를 멈추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권희정 상명대부속여고 교사·숭실대 철학과 겸임교수


[출처: 중앙일보 2016.7.5일자] [사설 속으로] 오늘의 논점 - 브렉시트 후폭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