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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향기

하루밤을 자도 만리장성을 쌓는다

by 라폴리아 2016. 2. 4.

중국 진시황이 만리장성을 쌓기 위해 인부들을 모아 대역사를 시작했을 때의 일입니다. 


어느 깊은 산골 외딴 집에 신혼 부부가 살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결혼한지 사흘만에 남편이 만리장성을 쌓는 부역에 끌려 가고 말았습니다. 일단 만리장성을 쌓는 일에 끌려 가면 그 일이 언제 끝날 지도 모르는 상황이니 부역에 끌려 간 남편의 목숨은 죽은 목숨이나 다를 바 없었습니다. 안부 정도는 인편을 통해서 알 수 있었지만 부역장에 한 번 들어가면 공사가 끝나기 전에는 나올 수 없기 때문에 신혼 부부는 생이별 하게 되었으며 아름다운 부인은 아직 아이도 없이 혼자서 외롭게 살아 가고 있었습니다. 
요즈음 같으면 재혼을 하든지 다른 방법을 찾아 볼 수도 있었겠지만 그 당시에는 조금도 딴 마음을 먹을 수 없었습니다. 

남편을 만리장성 쌓는 일에 부역을 보낸 여인이 혼자서 외롭게 살아 가고 있는 산골 외딴 집에 어느 날 석양 무렵에 지나가던 나그네가 찾아 들었습니다. 부역을 나간 남편의 나이쯤 되는 사내가 싸릿문을 밀고 들어서며....

"갈 길은 먼데 날은 저물고 이 근처에 인가라고는 이 집 밖에 없습니다. 헛간이라도 좋으니 하룻 밤 묵어 가게 해 주십시오"

하고 정중하게 부탁을 하는지라 '여인네 혼자 살기 때문에 과객을 받을 수가 없다'고 차마 박정하게 거절할 수가 없었습니다.

저녁 식사를 마친 후, 바느질을 하고 있는 여인에게 사내가 말을 걸었습니다. 
"보아하니 이 외딴 집에 혼자 살고 있는 듯한데 무슨 사연이 있습니까?" 
여인은 숨길 것도 없어서 그 간의 사정을 말해 주었습니다. 

밤이 깊어가자 사내는 여인이 덮고 있는 이불 속으로 기어 들면서 노골적인 수작을 걸기 시작했고, 쉽게 허락할 것 같지 않은 여인과 실랑이가 거듭되자 사내는 더욱 안달이 났습니다. 
"부인, 이렇게 아름다운 부인이 과부처럼 혼자서 살다가 늙는다면 인생이 너무 허무하지 않겠습니까? 돌아 올 수도 없는 남편을 생각해서 정조를 지킨들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언제 돌아올지 모르는 남편을 기다리며 살기에는 당신은 너무 젊고 아름답습니다. 내가 평생을 책임질 테니 우리 함께 멀리 도망가서 행복하게 삽시다." 
그러면서 사내는 더욱 저돌적으로 달려들었고, 깊은 밤 인적 없는 깊은 산골 외딴 집에서 여인 혼자서 절개를 지키겠다고 두 다리를 바짝 오무리고 있는 힘을 다해 저항했지만
소용없는 일이었습니다. 여인은 일단 사내의 뜻을 받아들여 몸을 허락하겠다고 말한 뒤, 한 가지 부탁을 들어달라고 말 했습니다. 여인의 말에 귀가 번쩍 뜨인 사내는 어떤 부탁이라도 다 들어줄테니 어서 말하라며 재촉했습니다. 
"남편과는 결혼해 잠시라도 함께 산 부부의 정리가 있는데, 부역장에 끌려간 남편이 언제 돌아 올지 모른다고 해서 사람의 도리도 없이 그냥 당신을 따라 나설 수는 없는 일 아닙니까? 제가 새로 지은 남편의 옷 한 벌을 싸 드릴테니 날이 밝는 대로 제 남편을 찾아가서 갈아 입을 수 있도록 전해주시고 그 증표로 글 한 장을 받아다 달라는 부탁입니다. 어차피 살아서 다시 만나기 어려운 남편에게 수의를 마련해 주는 마음으로 옷이라도 한 벌 지어 입히고 나면 당신을 따라 나선다고 해도 마음이 가벼울 것 같습니다. 당신이 제 심부름을 마치고 돌아 오시면 저는 평생을 당신을 의지하고 살겠습니다. 그 약속을 먼저 해주신다면 기꺼이 몸을 허락 하겠습니다." 

사내가 듣고 보니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니었습니다. "그렇게 하겠다고!"약속하고 '이게 웬 꿈이냐' 하는 생각으로 여인과 마음 껏 운우지락을 나눈 후,
깊은 잠에 골아 떨어졌습니다. 아침이 되어 누군가 흔들어 깨우는 바람에 사내는 단잠에서 깨었는데, 아침 햇살을 받아 얼굴이 빛나도록 예쁜 젊은 여인이 살포시 미소를 머금고 자기를 내려다 보는데 잠결에 보아도 너무 아름다웠는지라 이런 미인과 평생을 같이 살 수 있게 되었다는 벅찬 황홀감에 사내는 간밤의 피로도 잊고 벌떡 일어나서 어제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길을 떠날 채비를 했습니다. 여인은 사내가 보는 앞에서 장롱 속에서 새 옷 한 벌을 꺼내 보자기에 싸더니 남자의 봇짐 속에 챙겨 넣었습니다. 사내는 잠시도 여인과 떨어지기 싫었지만 하루라도 빨리 심부름을 마치고 돌아와서 평생을 여인과 함께 살아야겠다는 마음으로 쉬지 않고 달리듯 걸었습니다.


길을 떠난지 며칠 후 드디어 여인의 남편이 일하는 부역장에 도착한 사내는 감독하는 관리를 찾아서 여인의 남편 면회를 신청했습니다. 면회를 담당하는 관리에게 부역을 하는 여인의 남편에게 옷을 갈아 입히고 한 장의 글을 받아 가야 한다는 그간의 사정 이야기를 하자, <부역자에게 옷을 갈아 입히려면 공사장 밖으로 나와야 하며, 부역자가 작업장 밖으로 나오려면 그를 대신해서 다른 사람이 들어가 부역자 대신 일을 해야 한다>는 규정 때문에 옷을 갈아 입을 동안 누군가 다른 사람이 교대를 해주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이윽고 여인의 남편을 만난 사내는 옷 보따리를 건네 주고는. 옷을 갈아 입을 동안 내가 당신 대신 공사장에 들어가 일을 할테니 "빨리 이 옷을 갈아입고 편지를 한 장 써서 돌아오시오." 하고는 사내는 별 생각 없이 여인의 남편을 대신해 작업장으로 들어 갔습니다. 

남편이 옷을 갈아입으려고 보자기를 펼치자 옷 속에서 한장의 편지가 떨어 졌습니다. 

"당신의 아내 곱단이 입니다. 언제 돌아 올지 모르는 당신을 공사장에서 빼내기 위해 이 옷을 전한 남자와 하룻밤을 지냈습니다. 이런 연유로 외간 남자와 하룻밤을 같이 보내게 된 것을 두고 평생 허물하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면 이 옷을 갈아 입는 즉시 뒤도 돌아보지 말고 눈썹이 날리도록 달려 제가 있는 집으로 돌아 오시고 혹시라도 그럴 마음이 없거나 허물을 탓하려거든 그 남자와 다시 교대해서 공사장 안으로 들어가십시오." 
결혼 후 단 사흘을 보내고 만리장성을 쌓는 일에 끌려온 남편에게 그동안 꿈에도 잊지 못하던 아름다운 아내가 보내온 편지의 내용은 그랬습니다. 자신을 기약 없는 부역에서 빼내주기 위해 다른 남자와 하룻밤을 지냈다니.... 그런 일은 강물에 배 지나간 자리와 같아서 흔적도 남지 않는다는데, 그 일을 모른 체하고 평생을 사랑하는 아내와 아들 딸 낳고 오손 도손 사는 것이 낫지, 어떤 어리석은 사람이 평생 못 나올지도 모르는 만리장성 공사장에 다시 들어 가서 아내의 편지를 가져온
사내와 교대 해 그 무거운 중노동을 하겠습니까?

 
남편은 옷을 갈아 입기가 바쁘게 그 길로 아내에게 달려 가서 아들 딸 낳고 오손 도손 행복하게 잘 살았다는 이야기입니다. 
<하루밤을 자도 만리장성을 쌓는다>는 말이 <만난지 얼마 되지 않은 남녀가 하루 밤을 같이 함으로 깊은 인연을 맺을 수 있다>는 뜻으로 이해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본래의 뜻은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또한, 살다가 어느 날 아내가 좀 실수를 하더라도 부디 타박을 하거나 평생 그 일을 들먹거리며 아내를 타박하지 말고, 더욱 사랑하며 잘 다둑여 주면 아내는 분명 전보다 더욱 당신을 사랑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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