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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청곡

신영조, 산노을

by 라폴리아 2019. 4. 30.





산노을
/ 유경환 작사, 박판길 작곡, 신영조 노래


먼 산을 호젓이 바라보면 누군가 부르네

산너머 노을에 젖는 내 눈썹에 잊었던 목소린가

산울림이 외로이 산 넘고 행여나 또 들릴 듯한 마음

아 아, 산울림이 내 마음 울리네

다가오던 봉우리 물러서고

산 그림자 슬며시 지나가네

 

나무에 가만히 기대보면 누군가 숨었네

언젠가 꿈속에 와서 내 마음에 던져진 그림잔가

돌아서며 수줍게 눈감고 가지에 또 숨어버린 모습

아 아, 산울림이 그 모습 더듬네

다가서면 그리움 바람되어

긴 가지만 어둠에 흔들리네






가곡 <산노을>G단조의 쓸쓸하고 우울한 가락이다. 먼 산에 걸려 있는 노을이 외로움을 유발하고 그 산이 외로운 시인을 손짓하는 듯한 착각에 빠져든 시상을 느릿한 박자의 멜로디가 잘 소화하고 있다.

작곡가 박판길(70세 전 충남대 사대 음악과 교수)씨가 <산노을>을 작곡한 것은 1972, 그의 첫 작품은 아니지만 히트 작이다.

"그 전까지는 기악곡 위주로 작곡을 해 오다가 우리 혼이 깃든 가곡에 눈을 떠서 유경환 씨에게 가사가 될 시를 부탁했죠. 그래서 <산노을>을 받아 읽었는데 고향집 뒷산에서 어릴 때 본 낙조의 아름다움과 그 속에 깃든 쓸쓸함과 그리움이 느껴져 가슴이 뭉클해졌습니다."

고속버스 터미널 뒤 국립도서관 뒤쪽에 있는 2층 양옥 자택에서 만난 박씨는 차분히 옛 얘기를 들려 준다.

 

시는 붉은 노을의 아름다움과 황혼에 서린 우수를 그린 것이고 내향적 성격의 작곡가 역시 E단조의 음울한 멜로디를 붙였다. 이 노래는 4분의 4박자와 4분의 5박자가 엇갈려 변 박자가 심하고 음폭이 넓고 극적이어서 성악가들이 부르기엔 다소 까다롭다. 이 까다로움 때문에 이 곡은 3년만에야 햇빛을 보았다.

"사장되는 줄 알고 안타까워했는데 테너 안형일 씨가 1974년도에 국립극장에서 독창회를 가질 때 부르겠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테너인 그를 위해 음계를 G단조로 올려서 바꾸어 주었습니다."

그래서 본래 E단조였다가 G단조로 발표됐다.

 

그의 고향은 군산시 중앙로 533번지이다. 그러나 지금은 지번이 없어져 집을 찾을 수가 없다. 그의 모교인 중앙보통학교는 고속버스 터미널에서 도보로 약 10분 거리. 이 학교에서 역시 10분쯤 뒤로 가면 월명산(月明山) 월명공원이 있다. 군산시민의 체육과 휴식 공간인 이 공원은 새벽 산책과 조깅 코스로도 사랑 받는 곳이다.

박씨는 날마다 이 산에서 놀며 어린 시절을 보냈고 이 중앙보통학교를 다녔다. 서울 남산과 비슷한 분위기의 월명산에 올라 북쪽을 내려다보니 금강 연안이고 몇 척의 작은 배도 떠 있었다. 산수의 조화가 잘 어울리는 이 고장에서 예술적 감성을 키운 그는 보통학교 3학년 때부터 습작이지만 작곡을 시작했다.

<산노을>은 어렵사리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는데 '시의 외로움과 우수적인 선율이 잘 어울린다'는 평을 들었다. 1970년대 중반에 김호성씨가 취임했고, 김성길·김대근·엄정행씨 등이 불렀으며, 신영조씨가 부산에서 발표회를 가질 때 불러 부산에서 더 잘 알려졌다. 신씨의 발표회 후 부산방송국에서는 한 달 간이나 이 곡을 방송했다.

 

<산노을>197951일 국립극장에서 가진 박판길 작곡발표의 밤에서도 연주됐다. 또 영남대 교수로 정년 퇴직한 테너 김금환씨가 1970년대 중반에 독일에서 발표회를 가질 때 불러서 호평을 받았는데 1982년에 박씨가 유럽 여행 중 독일에서 듣고 매우 감개무량해 한 기억도 있다.

박판길씨는 1928년 태생이다. 기독교 신자 집안은 아니었으나 아는 목사 집 덕분에 그는 교회에서 어려서부터 피아노를 쳤고, 성가대원으로서 피아노 반주자로 활약하며 음악과 가까워졌다. 보통학교 시절엔 밴드반 반장을 지냈는데 이 때 지도교사가 서울음대 교수를 지낸 작곡가 정회감씨다. 정씨는 훗날 서울 음대의 선배가 되기도 한다.

보통학교 시절에 작곡을 시작한 그의 곡은 다 없어졌으나 지금은 6학년 때의 작품인 동요 <나뭇잎 배>가 전해 온다. 12세 때 급우가 쓴 동시에 작곡했는데 그 친구가 요절함에 따라 후에 <산노을>작사자인 유경환 씨의 동시로 바꾸었다.


군산중학교 3학년 때는 <밤의 노래>를 작곡했는데 훗날 방태희 씨가 초연했다.

서울음대 작곡과에 진학하면서 고향을 떠났다. 대학 졸업후 기악곡 쪽에 주력하다가 <산노을>을 계기로 가곡으로 전환했다.

<산노을>이후에도 유경환 시에 여러 편곡을 붙였다. <어머니> <골짜기의 불빛> <풀피리><도라지꽃> 20여 곡이다.

1987년에 KBS FM의 청탁을 받아 작곡했다가 같은 해 915KBS FM 시간에 방송으로 초연 된 <유월나비>도 유씨의 시에 작곡한 것이다. 방송에서 박수길씨가 불렀다.

박씨의 가곡으로는 이외에도 김영랑 시에 작곡한 <오메 단풍들것네><좁은 길가에><강물이 흐르네><저녁 때>등이 알려져 있다.

 

대학 졸업 후 잠깐 경복고교에서 교편을 잡다가 여러 대학에서 강사 생활을 했고 1968-1971년에 도미 유학을 떠나 작곡을 배웠다. 미국 시카고 시() 시카고 음악학교에서 석사과정을 밟으며 시카고심포니 지휘자였던 피셔 교수에게 작곡과 지휘법 지도를 받았다. 귀국 후에도 대학 강사, 세종대 교수를 거쳐 1981년부터 충남대에 재직하다가 정년 퇴임했다. 한때 전주시향 상임지휘자와 대전시향 상임지휘자로 활약했다. 서울 살면서 1주일에 이틀만 고속 버스 편으로 대전에 내려가 강의를 했는데 왕복 4시간 여의 차내에서의 시간이 오히려 명상과 사색, 창작의 시간이 되었다.

 

한편 박판길씨와 깊은 인연을 맺고 있는 유경환씨는 시인이자 아동문학가이자 언론인이다. 유씨는 경복고 2학년 때 박판길씨가 서울음대를 갓 졸업하고 음악교수로 부임하면서 만난 사제지간이다. 사제지간이지만 나이가 8세 차이에 불과하다. 유경환씨는 <산노을>의 탄생을 이렇게 얘기했다.

"15년 전쯤 어느 날 박 선생님께서 만나자는 전화가 왔습니다. 깜짝 놀랐지요 박 선생님께서 배운지 2년만에 제가 졸업했고 그 분도 곧 다른 곳으로 가셔서 죽 소식이 끊겼었거든요. 회사 근처 다방에서 만났는데 가곡을 지을 시를 하나 부탁하시는 거예요. 그 동안 미국 유학을 갔다오셨다는 얘기도 하시고 이제부터는 서정 가곡에 우루 혼을 넣겠다고 하셨습니다. 저는 마침 출판했던 시집<산노을>의 표제시인<산노을>을 드렸죠 읽어보시고 아주 좋아하셨습니다"

박씨는 우리 감정에 딱 맞는다고 말했다. 그 후 리듬에 맞추기 위해 몇 개의 자구(字句)을 수정하느라고 여러 번 같은 다방에서 만났다. 얼마 지나 작곡 후 유씨는 어떤 가락인가 듣고 싶어했다. 박씨는 그 시끄러운 다방 안에서 노래를 불렀는데 그 가락에 유씨는 홀딱 반해 버렸다.

 

유시인은 한국인에겐 막연한 그리움이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의 흙과 풀 한포기 나무 한그루에도 조상의 넋이 스며 있고 그 넋에 그리움을 느낀다. 산봉우리 사이에 걸린 노을에서 느낀, 막연한 넋에 대한 그리움을 <산노을>에 담았다.

"노래는 시혼(詩魂)에 날개를 붙인 것이고 시는 날개를 얻어야 날아다닙니다. 그런데 그 시혼이 듣는 이나 부르는 이의 잠재적 정서에 공감돼야 널리 불리는가 봅니다. <산노을>은 잠재적 정서, 누구에게나 있는 공통적인 막연한 그리움을 담고 있어서 공감을 주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는 자신의 시에 곡이라는 날개가 달려서 널리 방방곡곡 날아다니는 데에 큰 희열을 느낀다. 시가 영원성을 부여받기 때문이다.

 

그의 시에는 김동진씨 등 여러이 날개를 달았다. 김동진 작곡<민들레><제비꽃>, 금수현 작곡<파도>, 나인용 작곡의 <설악산 ><고려청자>, 한용희 작곡 <물새의 고향><풀밭에서> 10여곡은한국가곡집에 수록된 곡으로 유씨의 시가 노랫말이다. 미수록된 곡에 그의 시가 가사로 채택된 것까지 모두 30여 편에 작곡됐다. 발표되지 않은 노래지만 그의 시에 작곡된 한태길(신일고 교사) 씨의 곡을 그는 가장 좋아한다.

"신학을 전공하신 분이라서 음악가들과 교분이 없고, 따라서 그 분의 곡이 성악가들에게 불려지지 않아 참 안타깝습니다. 그러나 제 시의 이미지를 누구보다 잘 용해시킨 곡을 만드셨죠. 제 감정을 그냥 녹인 게 아니라 맷돌에 곱게 곱게 갈아서 완벽한 정서로 곡에 넣었지요"

언젠가는 한태길 씨의 숨은 진주 같은 재능이 흙 속에서 나오고 말 것이라고 그는 강조한다.

유경환 씨는 시·동시·동화작가이자 35년째 사상계(思想界)잡지와 조선일보 등에서 일한 언론인으로 현재는 문화일보 논설고문이다.

 

출처 : 내마음의 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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