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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산춘추

성황천과 달천

by 라폴리아 2016. 9. 29.

성황천

시골 동네 앞에는 성황천이라는 큰개울이 흐르고 있습니다, 훗날 이름을 알게 된 것이지만. 큰개울보다 작은개울도 있었는데, 마을 앞에 바로 있는 개울은 앞개울, 저 윗마을 가는데 있는 개울은 윗개울이었습니다.

아무튼 큰개울을 가려면 앞개울을 먼저 건너가는데, 앞개울의 징검다리를 건너는 것이 꽤나 재미있었던 걸로 기억합니다. 앞개울 징검다리를 건너 큰개울로 가려면, 논과 논사이에 난 작은 길이 지났었는데, 개구리와 두꺼비 그리고 온갖 풀벌레가 많았습니다. 큰개울에는 스무개 정도의 큰 돌이 놓여있는 긴 징검다리가 있었습니다.

동네앞 큰개울은 집앞 앞개울과는 전혀 다른 개울이었습니다. 물속 돌멩이를 들면 희한한 수서곤충이 있었고요. 앞개울에서 보지 못했던 수수미꾸라지, 돌고기, 모래무지도 많았으니까요. 큰물이 한번 나간 후에는 수석쟁이들이 몇몇 다녀가기도 했습니다. 큰물이 나가고 물이 잔잔해지면 제방 및에 손을 넣어 신발짝보다 큰 붕어를 움켜대는 금주라는 동네형이 있었는데 그 형이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었습니다.

강변밭에 밭 매러 간 어머니와 할머니를 찾아 큰개울을 혼자 건너와 할머니와 어머니를 놀라게 했다는 막내누나 얘기도 있었습니다. 언젠가 온식구가 밤고기를 잡으러 햇불을 들고 나갔었는데, 그때 잡은 팔뚝만한 메기는 참 신기하기만 했습니다. 그러나 그 크던 큰개울 성황천은 육초로 뒤덮혀 있어 물줄기를 찾을 수가 없습니다. 큰비가 와도 강변쪽에 자갈밭을 만들지 못합니다. 무슨 고기가 있는지, 새뱅이가 있는지, 올갱이가 얼마나 있는지, 돌고기가 있는지 통 알 수가 없습니다. 속으로 앓고 있는지, 아니면 수초들이 물을 정화해 특급수를 만들어내고 있는지 통 알 수가 없습니다.

 

괴강, 달천

군대 제대하고 괴강교 밑으로 동네사람들과 같이 말조개를 잡으로 간 적이 있었습니다. 그 때 잡아온 말조개로 무슨 요리를 해먹었는지 기억나지 않지만, 그 때 간 사람들 모두 비료포대로 한 포대씩은 잡았던 것 같습니다. 언젠가 칠성면을 갔다오다 지금의 송동교 아래에서 어떤 사람들이 낚시를 하고 있었는데, 그 낚시가 '쏘가리낚시'라는 것을 그때 처음으로 알았습니다.

역시 제대 후 형과 함께 동진천 합수머리로 어항을 놓으러 갔었는데, 어항 속에 들어온 작은 쏘가리를 보고 또 얼마나 놀랐는지요. 그때 동진천 합수머리에는 갈겨니와 쉬리, 그리고 납자루가 엄청 많았던 걸로 기억합니다. 또 언젠가도 역시 형과 함께 화양동 입구 달천으로 어항을 노러 갔었는데, 그때 화양동 달천에서 꺽지라는 것을 처음 보았습니다. 앞개울과 우리 동네앞 큰개울에는 꺽지가 없었으니, '이게 꺽지냐구?' 보고 또 보고 했던 것 같습니다.

한번은 앞개울에 꺽지를 살려보려고, 화양동에서 잡아온 꺽지를 앞개울 돌 많은 여울에 방생해 준 적이 있었는데, 며칠 만에 가보니 방생해준 꺽지가 다 죽어 있었습니다.

 

앞개울, 큰개울 그리고 달천

앞개울과 큰개울은 늘 보는 개울입니다. 늦가을부터 초봄까지는 저희들끼리 모여있는 버들치와 왜매치 등도 볼 수 있습니다. 나의 어릴 적 추억이 고스란히 배어있는 추억의 개울입니다. 하지만 워낙 가까이 있어 그 소중함을 생각하지 않은 개울입니다. 그리움을 생각해서 그리운 사람이 아닌, 소중함이라는 단어를 생각해서 소중한 사람이 아닌, 사랑이라는 단어를 생각해서 사랑하는 사람이 아닌, 멈춰있지만 멈춰있지 않은, 추억이라지만 추억이라고 말하지 않아도 이미 내 마음에 자리잡고 있는 개울, 늘 거기에 있는 개울, 앞개울과 큰개울 성황천입니다. 

달천은 한 가정의 가장이 되고, 아이들의 아빠가 된 후에 나의 가족과 숱한 날들을 함께 한 강입니다. 수주팔봉, 목도, 송동교, 덕평 후영리....

거기에 피는 봄꽃, 여름꽃, 가을꽃 그리고 그곳의 겨울풍경까지도요. 제21회 리버세이사람들의 만남이 있기 1주일 전에 비가 왔습니다. 나름 상상을 많이 했습니다.

이끼가 잘 씻긴 자갈돌이 깔린 어느 여울에서 낚시를 할 저의 모습을요. 그 여울에서 꺽지가 물어주고, 끄리와 준치가 성가시다고 말하지만, 끄리와 준치를 잡고 즐거워할 저의 모습을요. 운좋게 쏘가리를 잡으면, 입질 받는 순간부터 '쏘가리다' 하면서 리버세이 사람들에게 소리지를 내모습을요.

그러나 1주일전에 내린 비의 양은 적었나 봅니다. 송동여울, 제월대여울, 조곡여울에 간신히 물길만 터줬나 봅니다. 강바닥은 미끄러웠습니다. 바닥에는 해감이 잔뜩 끼어 있었습니다. 부유물까지 떠 있었습니다. 달천의 가을강은, 언제나 그리운 가을강 달천은 그렇게 폭삭 늙어 있었습니다.

그러나 가을강 달천을 사랑합니다. 미국 네바다주 사막에 있는 어느 오아시스처럼, 권투 선수가 3분 열심히 뛰고 1분 쉴 수 있는 코너가 있는 것처럼, 가을강 달천은 저에게는 오아시스이며, 사각링의 어느 한 코너이기 때문입니다.

지난 여름, 그 혹독한 더위를 이겨낸 가을강입니다. 즉 이번에 본 가을강 달천은 원래 직선이 아니라, 큰 곡선의 한 부분임을 잘 압니다. 우리가 본 달천은 큰 곡선의 한 부분인 직선을 본 것입니다. 짧은 직선을 보고, 원래 달천은 직선이라고 한다면, 강을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사랑받을 강은 없을 것입니다.

큰 곡선의 일부인 직선도 달천의 모습이기에 가을강 달천을 다녀온 낚시꾼 마음은 가을풍뎅이처럼 풋풋하기만 합니다.


2016년 9월/광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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